“피고는 징역이… 어?” 법조항 없어진 줄 모르고 선고한 판사들

“피고는 징역이… 어?” 법조항 없어진 줄 모르고 선고한 판사들

기사승인 2013-05-29 05: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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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일선 판사들이 이미 삭제된 법 조항을 적용해 선고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잘못된 법 적용으로 일부 피고인들은 자신이 받아야 할 형량보다 과중한 벌을 선고받았다.

부산고법 창원재판부 형사1부(부장판사 한창훈)는 지난달 26일 평소 알고 지내던 가출 여중생을 유인해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원심과 같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중 영리약취·유인 조항(제5조의2 제4항) 등을 적용했다.

그러나 해당 조항은 지난달 5일 관련법을 정비하면서 삭제됐다. 추행이나 영리를 목적으로 사람을 약취·유인한 자를 가중처벌하기 위해 1990년 신설된 이 특가법 조항은 상대적으로 무거운 형량 때문에 논란이 됐다. 같은 범죄에 대해 형법은 징역 1∼10년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삭제된 특가법 조항은 징역 5년∼무기징역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대법원도 2011년 판례를 통해 이 점을 지적했었다.

삭제된 특가법 조항 대신 형법을 적용하면 형량은 낮아진다. 지난 10일 서울고법 형사11부(부장판사 김종근)는 성행위를 하려고 여고생을 모텔로 유인한 박모씨에 대해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특가법 조항이 효력을 가졌던 1심 재판 당시 재판부가 선고한 형량은 징역 3년6개월이었다. 삭제된 조항의 적용 여부에 따라 징역 2년이 오르내린 셈이다.

삭제된 조항을 잘못 적용받은 피고인은 A씨뿐만이 아니다. 국민일보가 조항이 삭제된 지난달 5일 이후의 판결문들을 분석한 결과 총 6개 판결에 사라진 조항이 적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고법 창원재판부 2건, 광주고법 1건, 광주고법 제주재판부 1건, 광주지법 1건, 서울북부지법 1건 등이다. 일부 고법 사건은 형이 확정돼 대법원에서 잘못된 법 적용을 바로잡을 길도 사라졌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법을 가장 잘 알아야 할 법원이 사라진 법을 적용하는 일은 법치국가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판사들은 하루에도 수십개씩 바뀌는 법을 일일이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대법원 행정처는 법원 내부 홈페이지 한쪽 코너에 작은 팝업창을 띄워 변경된 법률을 공지하고 있지만 이를 수시로 확인할 여유가 있는 판사는 드물다. 행정처는 일부 중요한 법이 변경될 경우에만 그 이유와 함께 게시판에 올려 공지한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판사들의 업무를 지원하는 행정처가 바뀐 법을 일선 판사들이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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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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