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 빨갱이 아닙니다” 훈장 3개에도 현충원 못가는 사연

“우리 아버지 빨갱이 아닙니다” 훈장 3개에도 현충원 못가는 사연

기사승인 2013-06-11 14: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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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6·25 전쟁에 육군 소령으로 참전했던 고(故) 홍화수(육군사관학교 5기)씨. 대령으로 전역한 홍씨는 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화랑무공훈장 2개와 충무무공훈장을 받았지만 현충원에 안장되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해 초 홍씨의 아들 의빈씨는 1983년 지병으로 숨진 아버지의 유골을 현충원 납골당에 모시려 했다. 그러나 현충원의 안장위원회는 이를 거부했다.

홍씨가 과거 ‘경향신문 매각 공작 사건’에 휘말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홍씨는 법정에서 “11년5개월간 반공전선에서 싸워온 군인이 공산주의자를 도울 수 있겠느냐”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1966년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형을 확정받았다. 그후 홍씨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한 채 지인들의 회사를 전전했다. 억울함을 풀지 못해 술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홍씨의 사인도 이 때 얻은 간암이었다.

홍씨는 숨진 지 20여년만에 사실상 누명을 벗었다.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위’는 이 사건을 ‘정권에 비판적인 신문사를 강제로 매각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중앙정보부가 개입한 사건’으로 결론 내렸다. 유족들은 당연히 아버지의 명예가 회복됐고, 현충원 안장도 가능할 줄 알았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처벌’ 전력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현충원이 이를 문제삼아 안장을 거부하자 의빈씨는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신청했다. 여기서도 걸림돌이 있었다. 재심이 개시되려면 과거 수사기관의 강압행위 등을 입증할 증거가 필요한데 홍씨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유족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국가기록원에는 홍씨에 대한 2·3심 판결문만 있을 뿐 수사기록 등이 첨부된 1심 판결문은 사라진 상태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부장판사 설범식)는 지난 3월부터 심문기일을 연기하고 있다. 변호인과 유족들이 관련 증거를 찾아올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다.

변호인과 유족들은 마지막 방안으로 국정원 과거사위에 관련 기록 열람을 신청해 놓고 있다. 여기에서도 기록을 찾지 못하면 재심신청을 철회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의빈씨는 “단지 아버지를 현충원에 모시고 싶을 뿐”이라며 “누가 봐도 무죄가 뻔한 상황인데 이번 재심을 신청하면서 실망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홍씨는 현재 경기 포천의 한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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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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