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민사재판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대법원, 구한말 민사판결서 전시

100년 전 민사재판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대법원, 구한말 민사판결서 전시

기사승인 2013-12-09 16:02:00

[쿠키 사회] 100년 전 구한말 민사소송은 어떤 식으로 진행됐을까.

법원도서관(관장 조경란)은 지난 4일부터 오는 13일까지 열흘 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서관 2층에서 진행되는 ‘2013 법원사자료 기획전’에 나주군수와 전남관찰사의 민사판결서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1899년 8월~1900년 1월 사이 작성된 이 판결서들은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재판소 구성법’이 공포됐음에도 단석(單席) 판사, 즉 오늘날의 단독판사를 구할 수 없어 군수가 재판을 심리하는 근대화의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개된 판결서는 전라남도 해남에 사는 오윤규씨가 묘지를 두고 소송을 제기한 내용을 담고 있다. 판결서는 55×88㎝ 짜리 한지에 쓰여 졌다. 재판소 구성법은 규격화된 용지를 사용토록 했지만, 규격용지를 구할 수 없었던 지방에서는 예전부터 쓰이던 넓은 한지를 사용했다. 판결서는 “해남에 사는 오윤규 등, 성주님께 삼가 재배 성서하옵니다”라는 오씨의 청으로 시작된다.

오씨는 “찰방(察訪)을 지내신 저희 선조 묘자리 바로 밑에 영산포에 사는 자가 암장한 죄로 성주님께 정소(呈訴) 하였습니다”라며 소송의 청구취지를 밝혔다. 판결서에 따르면 박규원씨와 나형렬씨는 문서를 허위로 제작해 묘를 암장했다. 오씨는 “엄히 다스려 묘를 파가도록 독촉하시어 타관(他官)에 사는 잔민(殘民)이 선조의 묏자리를 보존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천번 만번 간절히 바라오니 처분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고 썼다.

나주군수는 오씨의 소장 끝에 처분내용을 간단히 적는 것으로 판결서를 마쳤다. 나주군수는 “필히 판결을 내리는 날이 있을 것이다. (상경한) 박씨가 내려오는 것을 기다려 다시 정소할 일”이라고 적었다. 오씨는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자 나주군수에게 몇 차례 더 소장을 냈다. 이후 나주군수는 박씨와 나씨를 잡아오라고 명령했지만 기우제와 성 수축공사로 대질신문은 하지 못했다.

결국 오씨는 전남관찰사를 찾아간다. 관찰사는 조선시대 각 도에 파견된 지방 행정의 최고 책임자다. 전남관찰사는 “과연 소장의 사실대로 다른 사람의 선산에 투장하고 기한을 주어도 옮겨가지 않는다니 그 소행은 놀랄만한 일”이라며 상세히 지도를 그려올 것을 명했다.

오씨는 한지에 묘자리의 위치를 그려(사진) 별도로 제출했다. 마치 머리카락처럼 세로로 그어놓은 부분이 산을 표현하는 것이고, 중간에 표시된 점들이 묏자리의 위치를 가리킨다.

대법원 관계자는 “오늘날 판결문에 등장하는 지적도 개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오씨는 다음 소송기일 관찰사로부터 “이미 이번 달 그믐 안으로 다짐했으니 만일 기한 내에 이굴해 가지 않으면 엄히 가두고 묏자리를 파내게 할 일이다”는 지령을 받아냈다.

전남관찰사가 재판을 진행했지만 판결서에는 ‘재판소판사’ ‘전라남도재판소판사지장’이라는 날인이 찍혀 있다. 이는 전남관찰사가 재판소 판사의 지위를 겸했다는 뜻이다. 고선미 법원도서관 기록연구사는 “재판소 구성법을 통해 판사가 재판을 담당하도록 했지만 지방에는 전문 판사가 여전히 없는 상황이었다”며 “전통적 재판에서 근대적 재판으로 넘어가던 시기의 과도기적인 당시 모습을 보여주는 사료로써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구한말 법과 재판, 근대사법의 태동’이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회는 오는 13일까지 계속된다. 민사판결서뿐만 아니라 동학농민운동을 이끌었던 전봉준에 대한 판결서 복제본 등도 전시 중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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