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포를 쏘며 광장 쪽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시위대가 본부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은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일부 시위대는 거리에 세워진 트럭을 불태우는 등 과격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시위대 응급센터가 설치돼 있던 ‘장교의 집’에서 시신 3구가 발견됐고, 한 여당 관계자는 화염에 휩싸인 당사 안에서 질식사했다. 총상을 입거나 심장마비로 숨진 이들도 있었다. 야당 지도자 비탈리 클리츠코는 주변에 불길이 치솟고 있는 연단에 올라 “이 곳(독립광장)은 자유의 섬이며 우리는 이 곳을 떠나지 않고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빅토르 프숀카 검찰총장은 이날 벌어진 유혈사태에 대해 “(시위를 선동하거나 주도한) 그 누구도 책임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불과 이틀 전만 하더라도 양측이 이처럼 격하게 충돌할 것을 예상하긴 힘들었다. 정부 측은 지난 14일 시위 과정에서 체포됐던 시위대 234명 전원을 석방했고, 야권 시위대는 16일 키예프 시청 등 점거했던 건물에서 철수했다. 대통령 집무실 등 주요 관청이 몰려있는 그루셰프스키 거리에 대한 봉쇄도 해제해 차량이 통행할 수 있도록 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그동안 유럽연합(EU)과의 경제협상 재개, 총리 퇴진, 시위처벌 강화법 폐기, 시위 구속자 석방 등 유화조치를 취해왔다. 그러나 시위대 측이 주장해 온 대통령 자진 사태와 조기 총선에 대한 요구가 계속 평행선을 이어가자 갑자기 시위가 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계속해서 돈으로 우크라이나를 통제하려고 시도한 것도 시위가 촉발된 배경으로 비춰진다. 앞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야누코비치 정부 측에 유리하게 흘러가면서 20억 달러(약 2조1300억원) 규모의 현금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이미 약속한 150억 달러 원조의 일부분이었지만 이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러시아와 여전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돌연 시위가 격화되면서 이번 사태가 쉽게 가라앉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외신들도 3개월 동안 이어져 온 시위가 결정적인 국면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사태가 좀처럼 봉합되지 않는 데는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서야할 지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오랜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드네프르강을 경계로 친러 성향의 동부와 친유럽 성향의 서부가 대립해 있다. 러시아와 인접한 동부는 러시아어가 통용되고 러시아계 주민도 상당히 많다. 야누코비치 대통령도 동부 도네츠크 출신이다. 반면 서부는 대부분 주민이 우크라이나계로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한다. 서부 사람들은 자국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러시아보다 유럽과 가까워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분열된 우크라이나를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러시아와 유럽의 움직임도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사태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자 국제 사회는 일제히 우려를 표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즉각 상황을 진정시키고 독립광장에서의 충돌에 종지부를 찍길 바란다”고 밝혔다. 슈테판 퓔레 유럽연합(EU) 확대담당 집행위원은 트위터에 이번 사태에 대해 정부가 대화로 해결하길 바란다는 글을 남겼다. 스웨덴, 폴란드, 독일 외무장관도 일제히 우크라이나 정부 측에 유감을 표하며 양측이 화해할 것을 촉구했다.
반면 러시아는 서방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 같은 비극은 유럽의 정치인들이 우크라이나 위기 초반부터 극단주의 세력의 공격에 눈 감고 그들이 도발하도록 부추긴 결과”라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