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14일 오후 경북 구미시 모 아파트 정모(22)씨 집 문은 잠겨 있었고 창문은 깨져 있었다.
정씨는 게임을 하느라 28개월 된 아들을 방치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버린 혐의(살인 및 사체유기)로 긴급 체포돼 대구 동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옆집, 윗집 다 문 두드려 봤지만 문을 열어준 사람은 없었다. 어렵게 만난 아래층 주민(31)은 “이웃들 대부분이 인근 공단에서 2교대 근무하고 있고, 나도 아침에 공단에서 돌아와 쉬고 있다”며 “냄새가 나거나 아이 울음소리는 못 들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오래 굶다 보니 울 기력도 없었을 것이라고 경찰 관계자는 말했다.
온라인 게임에 빠진 정씨는 아내(21)와 지난 2월 별거를 시작했다. 아내는 한 공장에 취직해 기숙사로 들어갔고, 기숙사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되자 정씨가 양육을 맡았다.
그러나 게임이 문제였다. 지난 2월 24일부터 3일 동안, 3월 1일부터 7일 동안 아들을 집에 혼자 내버려 두고 PC방에서 게임을 하기도 했다. 집에 올 때 아들이 먹을 것 등을 사들고 와 먹이기는 했지만 게임을 하는 동안 아이의 끼니는 챙기지 않았다.
3월 7일 오후 1시쯤 집에 들어와 아들이 숨진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아무 조치 없이 집을 나가 PC방과 찜질방 등을 전전했다. 3월 31일 귀가한 그는 아들의 시신을 담요에 싸서 24일간 아파트 베란다에 내놨다.
정씨는 부패한 시신에서 악취가 나자 11일 오전 9시30분쯤 100ℓ짜리 쓰레기봉투에 시신을 담고 비닐가방에 넣어 집에서 1.5㎞ 떨어진 구미시 인동 주택가 쓰레기장에 버렸다.
정씨가 즐겨한 게임은 ‘리그 오브 레전드’, 넥슨의 1인칭슈팅게임(FPS) ‘서든어택’ 등 중독성이 강한 온라임 게임이다.
정씨는 ‘아들이 어디 있느냐’는 아내의 물음에 “어린이집에 맡겼다”는 등의 거짓말을 계속해 오다 13일 오전 대구 동부경찰서 동대구지구대를 찾아 “노숙을 하던 중 아들을 잃어버렸다”고 거짓 신고를 했다. 경찰의 추궁 끝에 사실을 털어놨고 시신은 13일 오후 3시30분쯤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은 아이가 아사(餓死)했을 것으로 보고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가릴 방침이다.
관리사무소 관계자(54)는 “최근 1년간 관리비를 내지 않아 수차례 독촉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안 받아 사람이 살지 않는 줄 알았다”며 “입주카드를 보고 젊은 부부가 사는 걸 알았고 집은 정씨의 어머니가 마련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윤우석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부모가 아이를 두고 외출하는 것도 아동학대의 범주에 들어가나 우리 사회는 그런 인식이 부족하고 가정에서 일어난 문제에 대해 외부의 개입을 꺼리는 경향마저 있다”며 “아동학대와 관련한 법적 장치 마련도 중요하지만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정씨가 아들을 방치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만큼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보고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천안에서는 중학생 딸을 아버지가 목검 등으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천안 동남경찰서는 지난 2월 15일 천안시 동남구 봉명동의 집에서 자신의 친딸 A양(15)에게 목검과 주먹 등으로 50여 차례 폭행을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폭행치사)로 아버지 강모(39)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전남 강진에서 가족들과 이사 온 강씨는 전처와 이혼하고 5개월 전 재혼했다. A양은 새 엄마와 불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양은 최근 한 달 사이 2~3차례 집을 나갔고 사건 당일 새벽 강씨가 천안 서부역 인근에서 A양을 데려왔다.
화장실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A양은 인근 순천향대 천안병원으로 급하게 옮겨졌으나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 A양을 치료하던 의료진이 몸에서 폭행 흔적을 발견, 경찰에 신고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경찰은 강씨에 대해 지난 2월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했었다. 강씨는 “딸을 때린 것은 맞지만 계단에 넘어져서 숨진 것”이라며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다.
경찰은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해 폭행에 의한 광범위한 근육 및 피하지방조직에서의 출혈이 발생한 사실을 확인했다.
구미=김재산 기자, 대구=최일영 기자, 천안=홍성헌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