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함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브라질월드컵에서 초반 충격적인 2패를 기록한 스페인 축구를 향해 자국 언론이 비난 대신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냈다는 소식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습니다. 우리 네티즌들은 조급증에 사로잡혀 성과를 바로 내지 못하면 무턱대고 비난만하는 우리 언론과 비교된다며 엄지를 들어올리고 있습니다.
23일 인터넷 유명 커뮤니티에는 ‘보고 있냐! 한국 언론’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높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진은 미디어 그룹 PRISA가 발행하는 스페인 스포츠신문 ‘AS’의 표지를 캡처한 것인데요. 영국매체 데일리메일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스페인이 칠레에게 0대2로 패배한 뒤 현지 언론의 반응을 종합한 기사에 포함돼 있던 것입니다.
AS는 스페인 ‘티키타카’ 축구의 대명사인 안드레스 이니에스타(30·바르셀로나)가 고개를 숙이고 그 곁에서 침통해 하는 세계 최고의 수문장 이케르 카시야스(33·레알 마드리드)의 사진과 함께 비난이 아닌 위로와 격려의 표제를 실었습니다.
“용서를 구하지 마세요. 우린 이미 당신들에게 많은 빚을 졌습니다.”
표제 위에는 유로2008 우승, 2010 남아공월드컵 우승, 유로2012 우승 등의 성과를 거둔 점을 함께 거론했네요.
그러니까 AS는 선수들에게 ‘너무 죄송해하지 말라, 그동안 당신들이 수 년 동안 스페인 축구의 황금기를 맞보게 해주지 않았느냐, 우리 국민들은 이미 당신들에게 큰 빚을 졌다. 이번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충격적인 결과를 냈지만 그동안 감사했다.’ 뭐 그런 뜻이겠죠.
표제는 그렇지만 기사의 내용은 선수들을 옹호하는 내용만으로 채워지지는 않았습니다.
‘끝은 무시무시했다. 언젠가 정상에서 내려오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고통스러울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세계여, 안녕. 이제 스페인은 굴욕이라는 처벌을 받으며 다음주 월요일 호주와의 마지막 결전에 나선다.’
스페인 축구는 지난 14일 네덜란드에게 1대5로 패배하면서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후 19일에는 칠레에게도 0대2로 완패하면서 일찌감치 조별예선에서 탈락했고요.
어쨌든 AS의 표지 편집을 놓고 우리 네티즌들은 한국 언론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초반 2연패를 한다면 위로와 격려는커녕 언론이 앞장 서 홍명보를 맹비난을 퍼부었을 거라는 거죠. 실제로 일부 매체는 러시아전에서 다소 부진했던 박주영을 신나게 비판했다는 점을 거론하는 네티즌도 있었습니다.
뉴스를 신문이 아닌 포털사이트에서 소비하는 게 대세가 되면서 ‘기레기’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들 합니다. 기레기란 기사의 질이나 진정성으로 승부를 거는 대신 선정적이고 낚시성 제목을 앞세워 조회수를 낚으려하는 기자와 매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신조어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기레기를 퇴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레기 기사를 읽지 않으면 됩니다. 간단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방법이긴 하지만요.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