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84년간 다양한 징크스를 양산했다. 징크스는 전술과 체력을 좌우하지 않는다. 다만 심리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슛한 공이 골대를 때리면 승리할 수 없다’는 징크스가 대표적이다. 리그나 토너먼트의 종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하락하면 심리적 요소는 주요 변수로 부상한다. 4강이나 결승에서 징크스가 빈번하게 거론되는 이유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독일·네덜란드·아르헨티나도 징크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10일 오전 5시(한국시간) 브라질 아레나 데 상파울루에서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가 마지막 결승진출권의 주인을 가리기 전까지 3개국의 우승 전망을 징크스별로 분류했다.
펠레의 저주에 따르면… 네덜란드
‘축구황제’ 펠레(74·브라질)는 월드컵의 우승 판세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명성을 따라가지 못했다. 반세기 가까이 거의 모든 월드컵에서 펠레로부터 지목을 받은 국가는 조기에 탈락하거나 사건에 휘말렸다. 1994 미국월드컵에서는 펠레의 입에 오른 콜롬비아가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자책골을 넣은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총격으로 숨지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펠레의 우승 전망이 저주로 불리는 이유다. 펠레의 시선이나 등장만으로 징크스가 되기도 한다.
펠레는 이번 월드컵에서 스페인과 브라질, 독일을 우승후보로 지목했다. 스페인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브라질은 4강전에서 독일에 1대 7로 참패를 당했다. 남은 국가는 독일뿐이다. 펠레의 저주가 또 한 번 적중할 경우 독일은 우승할 수 없다. 변수는 아르헨티나다. 펠레는 아르헨티나와 스위스의 16강전이 열린 지난 2일 아레나 데 상파울루의 관중석에 등장했다. 이로 인해 세계 축구팬의 우승 전망에서 아르헨티나와 스위스는 제외됐다. 네덜란드에는 펠레의 외면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개최대륙 징크스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유럽과 남미는 월드컵의 판세를 양분한 두 개의 거대한 기둥이다. 1930 우루과이월드컵부터 브라질월드컵까지 84년 동안 아시아·아프리카·북중미·오세아니아에 정상을 내주지 않았다. 아시아·아프리카·북중미로 개최대륙이 확산됐지만 모두 유럽과 남미의 우승을 위한 무대였다.
다만 유럽은 남미에서 열린 대회를 한 번도 정복하지 못했다. 남미는 1958 스웨덴월드컵(브라질 우승)을 제외하고 나머지 유럽에서 개최한 아홉 번의 대회에서 정상을 밟지 못했다. 유럽과 남미는 개최대륙일 경우 초강세를 보인다. 징크스보다는 홈 어드밴티지를 증명하는 기록에 가깝다.
브라질월드컵의 개최대륙은 남미다. 남미는 대회 초중반까지 초강세를 드러냈지만 이제는 아르헨티나가 마지막 불씨를 이어가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우승하면 개최대륙 징크스가 또 한 번 증명된다. 하지만 준결승전에서 네덜란드에, 결승전에서 독일에 패할 경우 유럽은 브라질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남미를 정복할 수 있다.
탱고의 저주에 따르면… 독일?
카메룬은 1990년 6월 8일 이탈리아 밀라노 주세페 메아차에서 열린 이탈리아월드컵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를 1대 0으로 격파했다. 1990년대 아프리카의 돌풍의 서막을 알린 승리였다. 카메룬은 B조를 1위로 통과하고 16강전에서 콜롬비아를 2대 1로 격파했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8강전에서 잉글랜드에 2대 3으로 져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아르헨티나를 이기면 결승까지 진출할 수 없다는 ‘탱고의 저주’의 시작이었다.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카메룬을 시작으로 매 대회마다 하나 이상의 희생자가 나왔다. 미국월드컵에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 2002 한일월드컵에서 잉글랜드, 2006 독일월드컵과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독일이 희생됐다.
탱고의 저주는 브라질월드컵에서 이미 깨졌다. 24년 만이다. 남은 일정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탱고의 저주는 성립하지 않는다. 네덜란드가 준결승전에서, 또는 독일이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이겨도 ‘결승까지 진출할 수 없다’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징크스의 발원지인 만큼 공식과 무관하다.
다만 네덜란드가 아르헨티나를 꺾고 올라간 결승전에서 독일에 패할 내줄 경우 탱고의 저주는 ‘우승할 수 없다’로 확장될 수 있다. 탱고의 저주가 브라질월드컵의 우승을 가른 징크스로 부상할 경우 수혜자는 독일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