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5일로 임명 1년을 맞았다. 지난해 이맘때 여름휴가를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허태열 전 비서실장 후임으로 그를 불러들인 지 벌써 365일이 된 셈이다.
김 실장은 요즘 다른 참모들이 취임 1년 축하인사를 건네면 웃으며 농담을 던진다고 한다. “6일이 되면 다시 축하해 달라.” 이 말에도 만사가 정확한 김 실장의 성격이 그대로 들어있다. 공식적으로 업무를 시작한 것은 작년 8월6일었다는 뜻이다.
그간 김 실장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대통령 참모의 전범(典範)이란 찬사를 듣는가 하면 박근혜정부 불통 논란의 원인제공자라는 악평도 많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실장은 냉철하고 딱딱한 이미지와는 달리 유머감각은 물론 감성적인 면모를 종종 보여준다고 한다.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자주 우스갯소리를 하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 농담을 할 때도 표정 변화는 전혀 없는 점이 특징이다. 그런 그가 지난 6월 이뤄진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서 떠나는 수석과 비서관들에게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1939년생이니까 올해 75세로, 역대 최고령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업무에서만큼은 젊은 참모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력적이다. 최대 강점이 업무에 임하는 자세와 핵심을 찌르는 능력이라는 게 다른 참모들의 전언이다. 함께 일해 본 이들은 한결같이 탁월한 조직력을 갖췄다고 평한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한번도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자기관리가 철두철미한 분”이라고 했다. 고령이라는 지적을 의식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김 실장은 자신의 집무실에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70세에 이뤄졌고,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성당 벽화를 90세에 완성했으며, 괴테는 파우스트를 82세에 마쳤다’는 영어 문구를 걸어놓았다.
물론 반대되는 평가도 많다. ‘기춘대원군’ ‘왕(王)실장’ 등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 이를 대변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른다는 부정적 뉘앙스다. 세인들의 입에 회자됐던 청와대 인사실패가 거론될 때마다 그 타깃은 김 실장이었다. 자신의 인맥을 중심으로 한 제한된 인재풀 속에서 고위공직자를 고르다 보니 언제나 부작용이 컸다는 것이다. 톱니바퀴처럼 잘 짜여진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할 청와대 인사시스템이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말이 퍼졌다.
거기다 공안검사 출신으로 자신만의 업무인식도 이런 부정적 평판에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은 지난해 취임 직후 첫 브리핑에서 “윗분의 뜻을 받들어”라고 말했다. 상명하복에 충실했던 군사정권 시대 분위기를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불통 논란이 끊이지 않은 것 역시 그의 철저한 보안의식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김 실장은 임명 1년이 되도록 언론과의 스킨십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허 전 실장이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잦은 접촉을 통해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설파했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보안을 유독 강조하는 업무 습관이 청와대 전체로 확산돼 결과적으로 대외적인 불통 이미지를 더욱 고착화시킨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거듭된 인사실패 이후 박 대통령은 인사검증시스템을 확 바꾸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에 이뤄진 주일대사 내정은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77세의 유흥수 새누리당 상임고문이 주일대사로 내정된 데는 김 실장과의 경남중·고동창회, 서울대 법대 인연이 작용했다는 비판이 많다. 가뜩이나 꼬인 한·일 관계 매듭을 고령의 인사가 제대로 풀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청와대 안팎에서 인사 잡음이 계속될 경우 김 실장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