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로서 대중을 만난 지 벌써 햇수로 17년 됐다. 조여정(34)을 떠올리면 왠지 모를 친근감이 먼저 든다. 단순히 오래 본 배우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발랄한 에너지와 해맑은 미소가 늘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깜찍한 외모 덕분에 인기를 얻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배우로서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을 떠올리려니 한참이 걸린다. 적어도 영화 ‘방자전’(2010)을 찍기 이전엔 그랬다.
‘방자전’은 그의 연기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귀여운 이미지로 연예계 생활을 해오던 조여정에게 과감한 노출은 도전이었다. 다행히 새로운 매력은 대중에게 어필했다.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
이후 출연한 tvN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2011)에서 조여정은 애정표현에 솔직한 30대 여성을 연기했다. ‘후궁: 제왕의 첩’(2012)에선 다시 수위 높은 노출과 애정신을 선보였고, ‘인간중독’(2014) 때도 베드신이 있었다. 이번 새 영화 ‘워킹걸’에서도 또 과감한 연기를 소화해야했다. 장난감 회사를 다니다 하루아침에 짤리고 이웃사촌 난희(클라라)를 만나 성인용품 사업을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이미지가 한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본인이 느끼는 부담은 없을까.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조여정을 만나 어렵게 물었다. 대답은 확고했다. “시간이 걸릴 지라도 언젠간 사람들이 연기에 대한 제 진심을 느껴줬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지금은 다른 고민을 할 겨를도 없어보였다. 그는 단지 정성껏 만들어 내놓는 ‘워킹걸’ 개봉에 잔뜩 신나고 설렐 뿐이었다.
-‘워킹걸’ 시나리오 처음 보고 든 생각은
“정범식 감독님 전작 ‘기담’(2007)을 봤었거든요. 공포인데 슬픈 멜로 영화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감독님은 작품을 찍을 때) 한 가지 감정라인으로 가는 분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탈출’(2013)도 공포인데 되게 특이하잖아요. 그래서 ‘워킹걸도 뭔가 되게 독특한 발상으로 찍어 내시겠구나’ ‘재밌겠다’ 싶었어요.”
-장르가 또 섹시 코미디인데
“이번 영화에서 제가 막 섹시를 보여줄 필요는 없는 것 같았어요. 그냥 작품 속 상황이나 어른 장난감(성인용품)이라는 소재 자체가 섹시코드를 품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보면 보희(극중 조여정 역할 이름)랑 난희는 영화에서 섹시하려는 노력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둘이 (사업을 하면서) 되게 고군분투하고 진지하단 말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섹시 코드가 있는 작품인데도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 같아요. 섹시함을 의도하지 않아서 그런지 자연스러운 정도인 것 같아요.”
-과감한 소재와 설정. 부담 없었나
“전혀 없었었어요. 감독님이 미리 준비한 자료를 쫙 보여주셨어요. 어떤 톤앤매너로 가고 싶은지. 직접 스페인을 다녀오셨는데 되게 아름다웠대요. 거기서 찍어 오신 콘셉트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샵을 이렇게 꾸미고 싶고, 장난감 회사는 이렇게 할 거고, 여정씨가 이런 자동차를 탈 거고’ 그런 설명들을 다 해주셨어요. 보니까 너무 예쁜 거예요. 영화의 톤앤매너가 딱 들어오니까 (그런 고민은 없었죠). 감독님이 미술 부분 준비하시는 거 보면서 되게 예쁘게 나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애정신 분량이 많아 힘들었을 텐데
“재밌었어요. (김)태우 오빠한테 많이 의지하면서 찍었어요. 저랑은 영화 편수가 비교도 안 될 만큼 선배시잖아요. 현장에서 아이디어 내시고 재밌게 하시는 것 보면서 ‘역시 선배는 다르구나’ ‘나는 아직 멀었다’ ‘오빠가 남편 안했으면 내가 보희를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대본에는 보희 중심으로 써 있으니까 강성(김태우 분·극중 보희 남편)의 반응에 대한 설명은 별로 명시가 안 돼 있는데 그런 부분을 오빠가 현장에서 ‘이렇게 하게 될까’ ‘이러면 어떨까’ 하면서 아이디어를 내시더라고요.”
-축구장 신이 민망했을 법도 한데
(영화에서 보희가 음악에 맞춰 진동하는 팬티를 실수로 입고 아들의 축구 경기를 관람하러 갔다 애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담길 줄은 저도 몰랐어요. 현장에선 음악을 못 틀어놓고 찍으니까 혼자 속으로 계속 카운트하면서 하느라 정말 정신이 없었거든요. 계속 반응은 해야 되고 박자를 놓치면 그 장면을 못 쓰니까…. 내가 뭘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끝났는데 감독님이 너무 잘 나왔다고 좋아하시더라고요. (안도하고) 집에 왔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현장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이 보기에 내가 얼마나 웃겼을까 싶었어요(웃음).”
-기대하지 않고 본 결말이 의외였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 결말이 참 마음에 들어요. 좋잖아요. 가족의 사랑도 찾고 또 일적으로 이뤄놓은 것도 잃지 않고. 어쨌건 그런 것 같아요. 가족은 어쨌건 서로 소홀하게 되고 해도 나중에 오해 풀고 그럴 수 있잖아요. 현실적인 결말이었던 것 같아요.”
-‘워킹걸’이 단순히 야하기만 한 영화는 아니더라
“제목만큼 20대 이상 일하는 여자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아요. 게다가 결혼까지 했다면 더 그러시겠죠. 공감할 수 있는 층이 두터운 영화라서 일단 보시면 적어도 후회하진 않으실 것 같아요. 근데 또 보고나서 느끼고 가는 것들은 관객들에게 맡겨야죠. 어떤 걸 느끼실 지는. 확실히 이전가지 없던 스타일인 건 맞는 것 같아요. 약간 판타지적인 느낌? 귀엽게 풀어냈달까. 감독님 하신 표현 중에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귀엽고 건강하고 영화.”
-그래도 ‘섹시’를 표방해 홍보된다. 굳어지는 이미지에 대한 고민은 없나
“그건 제가 고민한다고 해결될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그저 제가 하고 싶거나 기회가 주어지면 하는 입장이죠. 그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느냐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선입견과 편견은 어쩔 수 없이 동반하는 거죠. 선입견이라는 게 금방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조금씩 바뀔 순 있겠죠. 한꺼번에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그냥 내 진심은 작품을 쫒는 거였다는 게…. 천천히 시간이 걸리더라도 작품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사람들이 느껴주면 되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이라도. ‘조여정이 해온 것들이 작품이구나, 연기구나’ 느껴주시면 더할 나위가 없죠.”
-‘워킬걸’로 선입견 많이 바뀌지 않을까
“그럼 이번 영화를 많이들 봐야 되는데? 많이많이(웃음)? 이런 말 가식으로 못하거든요. 근데 그냥 믿고 한번 봐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