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허삼관, 아이처럼 찍었어요”… 감독 하정우를 믿습니까

[쿠키人터뷰] “허삼관, 아이처럼 찍었어요”… 감독 하정우를 믿습니까

기사승인 2015-01-14 20:19:55
사진=박효상 기자

하정우(본명 김성훈·37)는 이미 배우로서 톱을 찍었다. 오를 곳이 얼마나 더 남았을까 의문이 들 때쯤 그는 돌연 새로운 길을 택했다. 감독이 되겠다는 말에 처음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점점 심상치 않다. 꽤 괜찮은 영화 ‘허삼관’을 들고 나왔다.

감독 하정우의 얘기가 듣고 싶어 1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를 찾았다. 인사를 나누며 “시사회 평이 좋다”는 칭찬을 건네자 그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정우는 “(배우로 활동할 때)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어서 마음을 놓을 수 없다”며 “‘황해’(2010) 때도 시사회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는데 관객 반응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벌써 샴페인을 터뜨리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허삼관’은 중국 유명작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 가난한 형편에도 아내(하지원)와 세 아들 일락(남다름), 이락(노강민), 삼락(전현석)이 있어 행복한 가장 허삼관(하정우)의 이야기를 그렸다. 하정우가 시나리오 각색에 참여해 한국 배경에 맞는 내용으로 다듬었다. 그뿐인가. 직접 출연해 본업인 연기까지 했다. 과한 욕심을 냈는데 놀랍게도 잘 해냈다.

‘허삼관’을 내놓으면서 느끼는 부담감은 분명 여느 때와 다를 것이다. 하정우는 “배우로서 개봉 기다릴 때도 굉장히 떨리고 설레고 긴장이 되긴 했지만 이번엔 두 개(연출·연기)를 하고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까 대학 합격자발표 기다리는 정도의 느낌이 든다”고 전했다.


사실 ‘허삼관’은 하정우 감독이 내놓는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도전은 ‘롤러코스터’(2013)였다. 저예산으로 만들긴 했지만 영화는 불과 관객 27만명을 들이며 흥행에 실패했다. 하정우는 “롤러코스터 때는 내가 보고 싶고 나만 웃을 수 있는, 내 입맛에 맞는 영화를 만들었던 것 같다”며 “지금은 그게 정말 개인적이고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실패가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든 건 아닐까. 이번 영화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다. 제작기나 촬영 뒷얘기 등을 물으니 그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말투와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전작에서 함께 작업했던) 선배 감독들이 저한테 딱 두 가지를 얘기했어요. ‘배우 할 때는 전날 술 먹고 연기해도 큰 지장이 없지만 감독할 땐 그러면 안 된다.’ 그리고 ‘진짜 모를 땐 스태프들에게 솔직하게 물어봐라. 그 사람들이 (너보다) 더 전문가다.’ 이렇게 딱 두 가지만 주문하더라고요. 그게 정말 제가 신인감독으로서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지키려고 했죠.”


실제로 그는 촬영장에서 의문이 들 때마다 집요하게 질문을 했다. 예컨대 원샷을 잡았는데 화면이 뭔가 부족해 보일 땐 바로 조명감독을 찾아갔다. 조언을 듣고 그대로 고쳐 다시 찍어보니 해결이 되더라는 것이다. 당시를 돌아보며 하정우는 “어린이처럼 물으면서 찍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세심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소한 소품이나 설정 하나에도 공을 들였다. 극중 허삼관이 키우는 고양이는 하정우가 실제로 모란시장에서 사와 새끼 때부터 직접 키운 것이다. 그의 손길이 닿았을 때 도망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영화 속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은 아버지 김용건을 떠올리면서 콘셉트를 잡았다. 아들에게 툭툭 건네는 말투도 아버지를 따라했다. 캐릭터 성격은 실제 결혼한 친구들 모습에서 찾았다.

“허삼관은 아버지 같지 않아서 매력적인 것 같아요.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친구들이 많은데 만나보면 ‘얘가 한 집안의 가장인가’ 싶을 때가 많아요. 여전히 (예전과) 똑같은 거예요. 달라진 게 있다면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허삼관도 우리가 아는 아버지가 아닌 그냥 한 남자로서의 허삼관. 그런 캐릭터면 훨씬 더 재밌겠다 싶었어요.”


하정우의 고민은 이렇게 깊고도 넓었다. 영화 구석구석 그가 신경 쓰지 않은 부분이 없다. 게다가 연기까지 해야 했으니 얼마나 고됐을까. 본인도 힘들긴 했던 모양이다. 앞으로도 연기와 연출을 같이 할 생각 있느냐고 물으니 “당분간은 그렇게 되진 못할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당분간은 연기에 집중하고 싶어요. 지금은 (감독으로서 한) 경험들을 활용해 배우로서 다른 감독님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현재로선 뭐 어떤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몇 년 지나고 나서 ‘뭔가 하고 싶다’고 꿈틀대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하게 되겠죠(웃음).”

관객들이 감독 하정우를 믿어줄까에 대한 고민도 상당했다. 그래서 홍보사 측에 마케팅할 때 ‘감독 하정우’ 타이틀은 빼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보통 출연배우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들에게 신인감독 하정우는 메리트가 없을 것 같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하지만 “꾸준히 작업하면서 쌓아가다 보면 언젠간 감독 하정우에게도 그런 신뢰감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는 게 그의 기대이자 바람이었다. 지금은 그 과정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하정우 감독 작품’ 이라는 설명만으로 충분해질 그 날이 멀지만은 않은 것 같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권남영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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