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배우 하정우(본명 김성훈·37)와 하지원(37)이 부부로 만났다. 조연엔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각색한 시나리오도 기대를 높였다. 영화 ‘허삼관’에서 검증되지 않은 건 신인감독 하정우뿐이었다.
배우로 승승장구하던 하정우에게 연출은 큰 도전이었다. 2009년 야심차게 첫 영화 ‘롤러코스터’를 내놨으나 싸늘한 반응만이 돌아왔다. 독특한 매력이 있는 저예산 영화였지만 대중성을 얻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실패를 거울삼아 마음먹고 만든 작품이 바로 ‘허삼관’이다. 상업영화로서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그의 두 번째 도전을 지켜보며 마음 한켠에 드는 의구심을 완전히 지울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번엔 어떻게 만들었나’ 의심어린 시선들이 많았다. 그런데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잘 짜여진 구성 속에 세련된 유머와 감성이 담겼다.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두말할 것 없다. 아역들까지 대견하게 제 몫을 해냈다.
주인공 허삼관(하정우)은 뚝심 있는 남자다. 강냉이팔이 아가씨 허옥란(하지원)에게 첫눈에 반한 뒤 적극적인 구애에 나선다. 첫 데이트를 잡아 피 팔아 번 돈으로 선물 공세를 하더니 대뜸 “나한테 언제 시집 올 거냐”고 묻는다. 옥란의 아버지(이경영)를 찾아가 결혼시켜달라고 당당히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게 옥란을 쟁취한 삼관은 결혼 후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가난한 형편에도 아내와 세 아들 일락(남다름), 이락(노강민), 삼락(전현석)을 보며 힘을 얻는다. 하지만 어느 날 일락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는 큰 충격에 휩싸인다. 일락은 옥란이 원래 만나던 남자 하소용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였던 것이다.
갈등이 휘몰아치면서 본격적인 전개가 펼쳐진다. 복잡한 감정들의 큰 폭을 넘나들며 캐릭터 색깔을 살려낸 배우 하정우는 역시 감탄을 자아냈다. 감독 하정우는 또 어떤가. 원작인 중국 유명작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124분 안에 그럴싸하게 그려냈다. 특히 유쾌한 전반부와 다소 침울한 후반부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킨 점이 돋보였다.
‘허삼관’은 하정우 영화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의 최고 대표작이 될지도 모르겠다. 실컷 몰입해 연기를 하다가 상대배우 눈을 그대로 바라본 채 “컷”을 외치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 하정우는 감독 겸 배우라는 쉽지 않은 도전을 썩 잘 해냈다.
초반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나 장면 연결이 살짝 어색한 부분들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시도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았나 싶다. 그를 응원하기 위해 흔쾌히 출연 결정을 한 이경영·성동일·주진모·김영애·정만식·조진웅·김성균·윤은혜 등 동료들의 마음도 영화에 힘을 실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