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권남영 기자] 영화계가 스크린 독과점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최근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양상입니다. 논란의 중심엔 영화 ‘국제시장’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개훔방)’이 있습니다.
두 영화는 규모부터 차이가 납니다. ‘개훔방’은 제작비 25억원이 투입된 비교적 ‘작은’ 영화입니다. 반면 ‘국제시장’은 180억원이 들어갔죠. 물론 얼마를 들여 만들었는지는 흥행 가능성을 따지기에 중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저예산 다큐멘터리였지만 관객들 마음을 흔들고 입소문을 타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엄청난 예산을 들였는데도 소리 없이 망한 영화들도 수두룩하죠.
문제는 배급입니다. 영화가 흥행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얼마나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두 영화의 명암은 사실상 여기서부터 갈렸습니다. ‘개훔방’은 소규모 배급사 리틀빅픽처스가, ‘국제시장’은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했습니다. CJ엔터테인먼트는 대규모 멀티플렉스 체인을 보유한 CGV와 계열사 관계에 있습니다.
‘국제시장’은 상영 내내 스크린 독과점 지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개봉 5일째인 지난달 22일 공정거래위원회가 CJ CGV와 롯데시네마에 상영·배급 차별 행위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리면서 영화는 더욱 주목을 받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영화는 꽤 괜찮은 박스오피스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고, 자연히 ‘상영관 몰아주기’의 대표 사례가 돼버렸습니다.
‘국제시장’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다음날 결국 일이 터졌습니다. 지난 14일 리틀빅픽처스의 엄용훈 대표가 돌연 사퇴를 선언한 겁니다. ‘개훔방’ 흥행부진에 대한 책임을 안고 사퇴한다고 밝힌 그는 대형 배급사의 상영관 독식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당시 사퇴문에선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으나 엄 전 대표는 최근 진행된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속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그는 “예전에 1000만 영화는 꿈이었는데 지금은 참 쉬워졌다”며 “정말 영화에만 공을 들여야 하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점점 영화계가 비정하고 매정해지는 느낌이다”라고 했습니다.
엄 전 대표는 “수요가 공급의 양을 창출해야 되는데 (현재는) 수직 계열화된 구조의 극장이 특수 관계에 있는 영화 공급 양을 (늘려) 수요를 끌어들이고 있다”며 “관객 1000만이 넘는다 한들 관객한테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대기업 중심 구조는 그 안에 일반 관객을 체류시킨다”며 “(그로 인해) 관객 개인의 판단, 영화에 대한 선택과 향유, 생각의 다양성 등을 잃어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일련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는 ‘갑질’이라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엄 전 대표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호소문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한국 영화 산업의 대기업 수직계열화에 따른 몰아주기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서 법으로 동일 계열기업 간에 배급과 상영을 엄격히 분리시키고, 상영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합리적으로 세워서 한국영화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기반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문득 지난 주 서울 강남구의 JK필름 사옥에서 만난 윤제균 감독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인터뷰에서 한창 대화를 나누던 중 “스크린 독과점에 힘입어 흥행했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윤 감독은 “사실 그건 틀린 말”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윤 감독은 “그런 내용의 기사에선 보통 스크린 수와 상영 횟수를 표기하는데 정확한 팩트가 되려면 좌석점유율 수치를 함께 넣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좌석점유율이 떨어지는데도 스크린 수를 줄이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 독과점이지만 국제시장은 보통 좌석점유율이 좋았다는 설명이었죠. 또 경쟁작들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은 스크린을 차지한 적도 없다는 게 윤 감독의 말이었습니다.
상영관을 많이 못 잡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은’ 영화들에 대해 얘기할 땐 잔뜩 어두운 표정이었습니다. 윤 감독은 “개훔방에 대한 얘기가 요즘 많이 나오는데 이런 영화는 1~2주 상영하고 내릴 영화가 아니지 않느냐”며 “개훔방은 좌석점유율도 높고 관객 호응도 많이 받은 작품인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가 배급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특정 관에서 (그런 영화들을) 계속 볼 수 있도록 협의해 오랫동안 많은 관객이 찾을 수 있게끔 하면 어떨까 싶다”며 “절대적인 관객수가 적다고 해서 금세 내리는 게 아니라 안정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조심스레 제안했습니다.
엄 전 대표를 언급하며 착찹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윤 감독은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엄 대표님과 잘 아는 사이일 뿐더러 같은 제작사로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모르겠다)”며 “저야 그냥 영화만 열심히 만드는 사람이니 (말하기 어렵지만) 비즈니스적으로 방법을 잘 찾아봤으면 좋겠다”고 토로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든 상황 개선은 분명 필요해 보입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아 큰 영화와 작은 영화가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는 윤 감독 말이 귓가에 맴돕니다.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