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권남영 기자] 지난 3일 저녁.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시어터를 가득 채운 2300여 관객들의 얼굴엔 설렘이 가득했다. 특히 열성적인 남성 팬들 모습은 여느 공연과 달랐다. 휴가를 나온 듯한 군복 차림의 관객이나 영국 프로축구 맨체스터 시티 유니폼을 입고 온 이들이 시선을 끌었다. 물론 외국인 관객들도 상당수 보였다. 영국 대표 밴드 오아시스(Oaisis)의 전 리더 노엘 갤러거(48)를 만나기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노엘 갤러거가 3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오아시스를 나와 활동 중인 밴드 하이 플라잉 버드(High Flying Bird) 내한공연을 위해서다. 2012년 1집 앨범을 발표하며 한 차례 내한한 이 밴드는 한국 팬들의 뜨거운 성원을 잊지 않았다. 정규 2집 ‘체이싱 예스터데이(Chasing Yesterday)’ 발매 기념 투어 일정에 한국을 챙겨 넣었다.
노엘을 ‘영접’하기에 앞서 한국 밴드 ‘바이 바이 배드맨’이 분위기를 달궜다. 오프닝 무대가 마무리되자 관객들은 점점 긴장하기 시작했다. 공연이 시작될 듯한 낌새가 감지될 때마다 술렁였다. 무대 위 밴드 악기들을 가리고 있던 검은 덮개가 걷히자 더 흥분했다. 스탠딩 관객들이 순간 무대 쪽으로 몰려 중심을 잃는 아찔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노엘이 등장했다. 검은색 셔츠 차림에 붉은색 일렉트로닉 기타를 맨 노엘이 무대에 오르자 관객들은 환호했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은 역시 그대로였다. 반길 새도 없이 바로 시작된 첫 곡. 새 앨범에 수록된 ‘두 더 데미지(Do the Damage)’로 포문을 열었다.
별다른 인사말 없이 연달아 네 곡을 선사했다. ‘스트랜디드 온 더 롱 비치(Stranded on the Wrong Beach)’ ‘에브리바디즈 온 더 런(Everybody's On The Run)’ ‘페이드 어웨이(Fade Away)’ 등 신곡들을 한국 팬들에게 처음 선보였다.
그리고 난 뒤에야 노엘은 무뚝뚝한 한 마디를 건넸다. “헬로우, 땡큐(Hello, Thank you).” 관객들은 뜨거운 함성으로 화답했다. “아이 러브 유, 노엘(I Love you, Noel)!” 곳곳에서 애틋한 고백들이 쏟아졌다. 이런 마음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엘은 바로 다음 곡을 이어갔다.
지난 앨범 수록곡 ‘히트 오브 더 모먼트(Heat of The Moment)’였다. 한국을 다시 방문한 소감이 어떻다는 등의 구구절절한 멘트 따윈 없었다. 이런 무뚝뚝함이 팬들은 전혀 놀랍지 않은 듯 했다. 객석에 있는 모두가 손을 흔들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음악을 함께 즐겼다.
‘리버맨(Riverman)’이 울려 퍼지자 드디어 ‘떼창’이 시작됐다. 노엘 자신도 이번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소개했다. 뜨거운 호응이 일자 순간 노엘의 딱딱한 표정이 풀어졌다. 노래가 끝난 뒤 어김없이 사랑 고백들이 쏟아지자 노엘은 “땡큐 베리 머치(Thank you very much)”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진 ‘데쓰 오브 유 앤드 미(Death of You and Me)’ ‘유 노 위 캔트 고 백(You Know We Can't Go Back)’ 등의 곡에서도 노엘은 흔들림 없는 무대를 선사했다. 소절마다 힘을 실어 무심하게 내던지는 그만의 창법이 반가웠다. 밴드와 어우러진 기타 연주는 감탄을 자아냈다.
노엘이 오아시스 시절 작사·작곡한 ‘샴페인 수퍼노바(Champaign Supernova)’에선 역시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노래가 흐르는 7분여 동안 떼창이 계속됐다. ‘발라드 오브 더 마이티(Ballad of the Mighty Ⅰ)’ ‘드림 온(Dream On)’ ‘더 멕시칸(The Mexican)’ ‘이프 아이 해드 어 건(If I Had a Gun)’ 등 곡들이 이어지면서 공연장은 열기로 가득 찼다. 아쉬운 시간만 계속 흘러갔다.
예정된 노래들이 마무리되자 노엘은 가볍게 인사하고 무대 뒤로 들어갔다. 그를 그냥 보낼 팬들이 아니었다. 노엘을 연호하던 팬들은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신과 나는 영원토록 존재할 거예요/ 우리는 영원할 거예요.(You and I are gonna live forever/ We're gonna live forever).’ 오아시스의 히트곡 ‘리브 포에버(Live Forever)’의 한 소절이었다.
다시 마이크 앞에 선 노엘은 잠시 팬들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내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인 그는 뒤돌아 밴드에게 앙코르 곡을 시작하자는 신호를 줬다. 그렇게 시작된 ‘돈트 룩 백 인 앵거(Don't Look Back In Anger)’는 모두를 열광케 했다.
1996년 오아시스의 싱글 중 두 번째로 UK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이 곡은 아름다운 작별을 고하기에 더할 나위없는 선택이었다. 진정한 떼창은 이때 나왔다. 팬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목청껏 따라 불렀다. 노엘은 후렴구를 아예 관객들에게 맡겨버렸다.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듯 관객들은 일제히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었다.
‘왓 어 라이프(What a Life)’ ‘마스터플랜(The Masterplan)’까지 이어진 뒤 공연은 정말로 끝이 났다. 노엘은 양손을 흔들어 관객들에게 인사하고는 다시 무대 뒤로 사라졌다.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리 야속하진 않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선사한 무대가 남긴 진한 잔상 때문이다.
팬들은 그의 뒷모습을 향해 연신 손 흔들어 인사했다. ‘곧 다시 만나요.’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 같았다. 4일 다시 2300여 관객들을 만난 노엘은 한국을 떠난다. “지난 방한 때 좋은 시간을 보낸 이후 투어 일정이 잡히면 한국이 포함됐는지를 찾아보게 된다”던 그의 말이 다음 내한 때에도 유효하길 빈다.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