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단비 기자] A병원에서 열리는 건강강좌 중 참가자가 가장 많은 강좌는 우울증과 수면에 관한 건강강좌다. 해당 대학병원 관계자는 대관한 강의실의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참가자가 모여 강의실을 옮기는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40년째 문구업을 하는 김찬수씨는 올해 예순 여덟이다. 최근 들어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고 말하는 그는 노년에 찾아오는 우울증이 걱정돼 정신건강 강좌를 찾아서 듣고 있다고 말했다. 마음의 병을 강조하는 뉴스를 볼 때마다 본인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는 것이다.
한 대학병원에서 하루 간격을 두고 대장암의 예방과 치료방법을 소개하는 암 건강강좌와 외상후 스트레스를 알려주는 트라우마 강좌가 열렸다. 대장암 건강강좌에 모인 참가자 수는 15명으로 강의실은 한산했다. 강연자가 준비한 자료의 양에 비해 참가자 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반면 트라우마 강좌에 모인 참가자 수는 50명을 넘겼다. 전날 대장암 강좌와 대조적인 풍경이다.
많은 대학병원이 각종 암의 예방법과 치료방법을 소개하는 시민 건강강좌를 자주 연다. 그러나 병원 관계자들은 강의실이 텅 비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말한다. 강연자로 나선 의료진이 무색할까봐 병원 직원들이 자리를 채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분노조절 장애 건강강좌에서 만난 박희봉씨는 “문병을 왔다가 분노조절 장애에 관한 건강강좌를 들었다. 예전에는 ‘들어도 소용없다’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서 들을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암 같은 병만 공부할 게 아니라 잘 먹고, 잘 자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부족한 면모들을 의학적인 도움을 받아 고쳐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 오순복씨는 최근 불안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고백하며 정신건강 강좌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오씨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일종의 장애인 줄 몰랐다. 불안을 느끼는 게 내가 못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는데 치료가 필요한 마음의 병이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회사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출장 강연이 열렸다. 주제는 ‘스트레스 관리법’이다. 호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직장인 김단희씨는 “스트레스가 타인에 의해 쌓인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내 마음의 문제였다. 스트레스를 질환으로 생각하니까 강연하는 동안 메모하며 듣게 됐다”고 말했다.
신체 건강에 위협적인 암보다 외상후스트레스나 우울증, 화병을 다루는 건강강좌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배경에 대해 병원 측은 암에 관한 정보가 매스컴에서 많이 다뤄진 것을 이유로 들었다. 또 우울증 등 마음의 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치료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아진 것도 주요한 이유로 들었다. 건강한 정신을 갖는 일에 다소 소극적이던 한국인의 정서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진은 “불안장애로 힘들어하는 50대 여성이나 인생 처음 우울증을 경험한다는 60대 남성, 스트레스 관리의 중요성을 느낀 직장인, 이들의 공통점은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갖가지 증상들을 더 이상 제쳐두지 않고 능동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kubee08@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