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취지를 부인할 이유는 없다. 일부 기업에서 소수 주주 권익이 홀대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속도와 균형이다. 산업 현장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힘들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고 현금 흐름은 말라붙었다. 미국은 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고, 경쟁 심화, 지정학 갈등 등으로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만 커진 상황이다. 원자재 수급부터 수출 영업망까지 어느 하나 안심할 구석이 없다.
“이제는 채용 계획조차 못 세운다. 버티는 게 전부다.” 한 중견기업 임원의 말이다. 이 와중에 규제 리스크까지 겹치면 기업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자명하다. 분기 실적을 방어하는 일이 유일한 목표로 바뀔 것이다. ‘연구개발, 신사업, 장기 투자’ 이런 말들은 점점 구호에만 남게 된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경영 판단에 대한 사후 책임은 더 무겁게 얹힌다. 투자로 일시적 손실을 보아도 ‘주주 이익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소송이 언제든 따라붙을 수 있다. 대법원이 경영적 판단에는 무죄 취지로 판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도, 그 전에 몇 년씩 이어지는 수사와 기소를 견디는 건 결국 경영진의 몫이다. 결과적으로 어떤 결정도 과감히 내리지 못하는 ‘위축 경영’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산업계는 이미 입법 저지는 어렵다고 본다. 대신 최소한의 안전판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주주 권한을 확대하는 만큼, 그 권한이 경영권 공격에 악용되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들어와 배당 확대나 사업 축소를 압박하는 일은 해외에서도 흔하다. 경영진이 소송 리스크를 두려워해 투자 결정을 미루면, 그 피해는 결국 일자리와 기술 경쟁력으로 돌아온다.
개정안 통과가 기정사실이라면 앞으로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정치권은 ‘선개정, 후보완’을 말해 왔다. 그러나 산업의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뒤늦게 보완책을 찾는다 해도 이미 잃어버린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 입법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더 투명한 자본시장을 만든다 해도, 기업이 미래를 준비할 역량을 꺾어버린다면 그 비용은 결국 산업이 감당할 몫이 된다.
좋은 법은 기업이 책임을 지게 하면서도, 그 책임이 미래 투자를 가로막는 족쇄가 되지는 않아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개정안이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느냐다. 책임 있는 입법과 세심한 보완이 없다면, 산업의 내일은 더 좁아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