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잔혹 동시’라는 키워드가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다. 10세 소녀 이모양은 “시는 시일뿐인데 진짜라고 받아들인 어른들이 많아 잔인하다고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시집 전체의 논란보다는 이양이 쓴 ‘학원가기 싫은 날’이라는 한 편의 시가 논란이 돼 전량 폐기처분됐다. 시집 전체가 문제가 있던, 한 편이 문제가 있던 ‘글’의 중요성에 대해서 심리학적인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
시도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글이고, 글자로 표현된다. 시의 내용을 독자들이 눈에 담고, 마음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양이 말한 것처럼 시는 시일뿐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글자는 맛있다. 기역(ㄱ)은 ‘각도’라는 단어 속에서 꺾이는 맛이 난다. 니은(ㄴ)은 ‘누워’라는 단어 속에서 눌린 납작한 맛이 있다. 디귿(ㄷ)은 동굴 같은 맛이 있다. 리을(ㄹ)은 ‘라면’에서 혀를 감게 마드는 부드러운 맛이 있다. 이렇게 자음과 모음 글자무늬 하나하나의 맛이 존재한다. ‘가족’도 맛이 느껴진다. ‘가’장인 아빠의 단단함의 맛도 있지만 ‘족’쇄 같은 답답함의 맛도 있고 ‘족’보 같은 뿌리의 맛도 있다.
미음(ㅁ)은 ‘마음’에서 안정적인 맛이 난다. 비읍(ㅂ)은 ‘바보’에서 부끄러운 맛도 난다. 시옷(ㅅ)은 ‘시샘’에서 시시한 맛이 난다. 이응(ㅇ)은 ‘아내’에서 둥글고 태양의 맛이 난다. 지읒(ㅈ)은 ‘중년’에서 지긋한 맛이 난다. 치읓(ㅊ)은 ‘초콜릿’에서 촉촉한 맛이 난다. 키윽(ㅋ)은 ‘칸타타’에서 크고 웅장한 맛이 난다. 티읕(ㅌ)은 ‘토마토’에서 독특한 맛이 난다. 피읖(ㅍ)은 ‘파티’에서 신나는 맛이 난다. 히읗(ㅎ)은 ‘하늘’에서 하얀 맛이 난다.
‘라면’이라는 단어 앞에 ‘신(辛)’이라는 글자가 붙으면 혀로 맛보지 않고도 이미 글자를 눈이 인식해 머리 속에서 ‘맵다’라는 맛의 개념을 만들어낸다. 이 개념은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한다. 이런 과정을 보면 인간은 언어를 통해 생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기일 때는 몸의 감각이 먼저였지만 언어의 지배를 당하면서 생각하는 인간으로 자라서 존재하기 때문에 언어라는 글자무늬에 의해 생각이 만들어진다.
보통 36개월 전까지의 아이는 감각에 의해서 생각과 기억을 만들게 된다. 갓 태어난 아이는 입술로만 소통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동물과 거의 흡사한 감각적 동물상태다.
‘신’라면을 아무리 보여줘도 시각적으로는 절대로 입에 침이 고이지 않는다. 또 우유라는 글자를 보여준다고 해서 절대로 웃게 만들 수가 없다. 하지만 우유를 먹이고 난 다음에 우유를 지속적으로 보여주게 되면 우유라는 글자무늬를 차츰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한국어가 모국어인 경우에는 한글무늬를 통해 뇌가 자극을 받게 된다.
이 과정을 4단계로 나눠서 보면 다음과 같다.
눈을 통해 글자무늬를 받아들이자마자 뇌의 후두엽에 있는 시지각에서 글자무늬를 ‘사진’과 같은 이미지로 인지를 한다. 이것이 첫 단계이다. ‘사과’라는 단어를 눈으로 받아들여 시지각에서 사과라는 대상을 사진 이미지처럼 받아 들인다.
그 다음 변연계라는 곳에서 ‘감정’을 처리한다. 사과라는 단어에 대한 감정이 어떠하냐에 따라 ‘사과’라는 글자무늬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이 변연계를 지나 정보는 전두엽으로 이동한다. 이 전두엽에서 작용하는 것은 ‘논리적 기억’이다. 과거에 사과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사과’라는 글자무늬와 동일시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것이 세 번째 단계이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행동’이다. 앞의 세 단계를 모두 거친 후에 입안에 침이 고이고 입맛을 다시는 입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혹은 손으로 사과를 그리거나 사과가 앞에 있으면 만지거나 하는 ‘행동’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글자무늬는 인간의 기억과 생각을 통해 마지막 몸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게 된다.
초성 심리검사를 통해서 보면 자신이 글자무늬의 맛을 어떤 식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ㄱㅈ’이 들어간 단어를 종이에 15개 써보라. 어떤 사람들은 ‘가족, 가정, 가장, 가죽, 가지, 고지, 공주, 공중, 구조, 구정, 거장, 걸작, 가자, 고전, 고종’ 이런 긍정적인 단어를 적는다. 이 단어들을 보면 부정적인 단어들이 없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은 대상으로 초성 심리검사를 해 보면 다음과 같이 부정적인 단어들을 많이 보게 된다.
‘거지, 가짜, 고자, 가증, 고장, 구질(구질), 고졸, 공짜, 강자, 검증, 건조, 군중, 곧장, 간장, 감자’
이런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 단어들을 적는 이유를 보면 자신의 상황과 경험 그리고 생각의 결과를 그대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살면서 긍정적인 단어보다는 부정적인 단어를 더 많이 맛봤기 때문에 그렇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단어의 맛은 느끼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하는 것이 글자무늬의 심리적 결과다.
살면서 이런 저런 경험에 따라 단어의 맛이 정해진다.
‘도전’이라는 단어의 맛이 술처럼 쓴 맛 일수도 있고 달콤할 수도 있다. 이전의 승패의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글자무늬 속에 어떤 경험을 주느냐는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 책을 펼치고 글자를 읽는 것은 아직 경험하지 않은 긍정적이고 밝은 맛을 경험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첫 글자무늬의 맛이 부정적이면 편견에 사로잡히게 된다. 심지어 무슨 맛인지 느껴보지 못한 글자무늬는 더욱 위험하다. 자기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성 심리검사에서 보면 화나 분노가 많은 사람의 경우에는 단어를 거의 적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 이유는 생각을 하기위한 기초 단계에서 감정이 가로막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생각을 가로 막는 것이다. 생각이 막히면 감정만 존재하게 된다. 감정만 존재하게 되면 36개월 전의 아이처럼 동물과 같은 상태가 된다. 즉 생각 없는 감정적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화와 분노가 많을 때는 책을 읽지 못한다. 글자무늬의 맛을 느끼기 위한 생각의 과정이 막혀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화와 분노를 구분한다.
화는 상대방을 아프게 하고 스스로는 위로 받는 것을 말한다. 그래도 화를 내고나서 사람들은 ‘시원하다’라는 말한다. 반대로 분노는 상대방을 아프게 한 이후에 자신도 아프게 되는 것을 말한다. 아프게 되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이 만들고 이 감정은 생각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버린다. 눈으로 글자무늬를 읽어야 하는 상황에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에서 마비가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부모의 경우에 자녀가 지금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마냥 책을 읽으라고 하면 글자무늬를 읽는 시늉만 하게 된다. 아무리 읽어도 시지각에서 멈추게 된다. 절대 기억의 재구성이 되지가 않는다. 그 이유는 글자의 맛을 느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글자무늬의 결마다 느껴지는 시고, 맵고, 짜고, 아름답고, 자유롭고, 깊은 맛을 느끼지 못하고 눈에서만 멈추게 된다.
논란의 주인공인 10세 소녀 이양이 앞으로 혹시 시를 쓴다면 ‘시는 시일뿐이다’라는 생각보다는 우울하고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아름답고 희망의 시를 쓰길 바란다.
이재연 대신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 교수
정리=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