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시원시원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온 박보영은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감독 이해영)’에서 소심하고 제 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소녀 주란으로 변신했다. 폐병이 있는 데다 의붓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버려지듯 온 기숙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친해지기 어렵다. 그 가운데서 제게 손을 내민 연덕(박소담)은 구원과도 같은 존재다. 연덕과 함께하게 된 주란은 극 안에서 폭이 넓은 감정을 오간다. 소심하던 주란이 분노하고 오열하게 되는 감정을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박보영의 공이다.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보영은 주란의 연기가 사실 그리 매끄럽지는 않았다고 고백했다. “주란이 영화 내에서 수많은 일을 겪어가면서 감정 변화나 신체적 변화를 느끼는 것들이 머리로는 이해가 됐는데 표현을 잘 할 수 있을까 정말 많이 걱정했어요. 영화 줄거리 특성상 대사나 단편적인 표정들로밖에 보여줄 수가 없으니까 과장될 것 같았죠.” 박보영이 처음으로 연기하는 초현실극이다. 어려울 수밖에 없다. 주란이 느끼는 감정들을 박보영은 전적으로 상상에 의지해 연기해야 했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제 얼굴을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고 감독님이 말씀하셨는데, 여태까지 도대체 제가 보여주지 않은 얼굴이 뭘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죠.” 집에서 혼자 거울을 보며 한참이나 연기해보기도 했다. 아직 영화를 한 번 밖에 보지 못한 박보영은 영화를 보면서도 제 연기의 흠결을 잡아내는 데에만 바빠졌다고 웃으며 고백했다.
전작인 ‘피 끓는 청춘’에 이어 두 번째 교복 연기다. 어느덧 2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지만 대중이 박보영에게 가진 이미지는 대부분 10대 중후반의 소녀 이미지다. 소녀 이미지를 벗고 싶은 생각은 없느냐고 물으니 박보영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미 너무 많이 받은 질문이란다. “제가 성숙한 연기를 하고 싶어 하고, 일부러 골라 한다고 해서 관객들이 바로 ‘어 박보영 소녀에서 여자 됐네’하고 단번에 받아들이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사실 저도 소녀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많지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 같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 제가 교복을 입어도 어느 순간 나이가 보일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소녀 소리는 없어지게 되겠죠.”
멜로 연기에 대한 욕심은 없을까 물었더니 아직은 때가 아니란다. 경험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놀랍게도 박보영은 아직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저희 언니가 결혼을 했는데, 언니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 할 때 마음이 정말로 아프고 찌릿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아직 그런 경험은 없어요. 준비가 안 됐다고 할까? ‘늑대소년’ 정도의 풋풋한 표현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있다 하려고요.” 박보영이 멜로 영화를 찍는 순간 그간 연애를 했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는 전언이다. (②에 계속) rickonbge@kmib.co.kr /사진=박효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