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파벌·실적 압박에 투신 자살한 대기업 상무… 법원 “업무상 재해”

사내 파벌·실적 압박에 투신 자살한 대기업 상무… 법원 “업무상 재해”

기사승인 2015-09-07 09:54:55
[쿠키뉴스=김민석 기자]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LG유플러스 임원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최연소 상무에 오른 이모(사망 나이 46세)씨가 매출 압박을 받아왔고 회사 내 대인관계도 나빠져 우울증을 겪다가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김병수)는 1년이 넘는 심리 끝에 이씨의 유족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자살 직전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우울증세가 발생했고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2010년부터 LG유플러스에 근무한 이씨는 평균적인 상무 승진 나이보다 4~5년 일찍 승진했다. 회사 내 최연소 상무로 IPTV 경험이 없는 상태였으나 해당 부분의 사업본부장을 맡게 됐다.

문제는 그가 맡은 사업의 실적이 하락하면서 발생했다. LG유플러스의 IPTV 사업 매출실적은 2010년, 2011년에는 목표치를 웃돌았지만 2012년 사업연도부터 KT, SK텔레콤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시장점유율이 하락했다. 같은해 3월쯤부터 가입자 수를 늘리기 위해 ‘실적 두 배 증가 운동’을 펼쳤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씨는 자신이 피합병회사인 LG파워콤 출신이어서 LG텔레콤 출신 직원들에 비해 인사에 있어 불이익을 받는다고 느껴왔다. 이씨는 대학을 마친 1989년부터 LG 인터넷·통신 계열사에서 일했다. 그러다 2004년 LG파워콤에 영입됐다. 자신을 점찍어 데려온 한 임원은 2006년 대표이사에 올랐다. 이씨는 큰 신임을 받으며 사내에서 승승장구했다.

2010년 LG텔레콤이 LG파워콤과 LG데이콤을 흡수합병해 LG유플러스를 출범시키며 A씨도 LG유플러스로 편입됐다. 그는 그간 성과를 인정받아 입사와 동시에 상무로 발탁됐다.

실적 압박을 느낀 하루 평균 13∼15시간을 회사에서 보냈다. 주말에는 거래처 접대를 위해 골프 모임에 갔다. 골프 모임이 없으면 출근해 일을 챙기며 고군분투했다. 재판부는 “실적 부진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이씨가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느껴 우울증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특히 이씨를 발탁한 LG파워콤 전 대표이사는 이씨의 직속 본부장으로 있다가 2012년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LG텔레콤 출신의 새 본부장은 이씨를 배제하고 이씨의 부하 팀장들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내렸다.

이씨는 과거 친했던 동료들이 자신을 멀리하고 등을 돌린다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사내 이메일로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고 호소하기까지 했다. 이씨는 또한
전 동료들에게 자신이 공황장애가 있는 것 같고, 임원 회의에서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두 차례 했으며 ‘사는 것이 재밌느냐’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 ‘그동안 회사와 집만 다니고 취미나 다른 일이 20년간 없었다’ 등 평소에 하지 않았던 말을 하기도 했다.

2012년 4월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국내 IPTV 가입자 500만명 달성 기념상을 받게 되자 공개석상에서 상사로부터 ‘상무 직급이 대표이사에 앞서 훈장을 받는 것이 불쾌하다. 훈장을 취소하고 싶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다.

아내에게는 사표를 내고 싶다면서 모아둔 재산이 얼마인지, 한 달 생활비가 얼마인지 등을 물었다. 평소엔 TV를 거의 보지 않았지만 사망하기 며칠 전 드라마를 연이어 시청하거나, 출근 전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안내에게 “안아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결국 이씨는 2012년 8월 10일 오전 출근길에 처남에게 “아이들과 처를 잘 부탁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가족들과 함께 살던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오전에 사장단 업무보고가 있던 날이었다

아내 A씨는 남편이 업무 때문에 자살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부지급 결정을 받자 이번 소송을 냈다.


회사 측은 “이씨는 영업부문 상무가 아니라 실적 압박은 크지 않았다”며 “전날 밤 부부가 심하게 다퉜다고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판결문은 선고 5일 후 유족에게 도착했다. 일과 집밖에 모르던 두 아이의 아빠가 왜 가족을 뒤로하고 뛰어내려야 했는지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이 담겨 있었다. 이씨가 사망한 지 3년하고도 16일이 더 지나서다. ideae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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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
김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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