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특종:량첸살인기’ 진실을 잡아먹은 거짓의 후일담

[쿡리뷰] ‘특종:량첸살인기’ 진실을 잡아먹은 거짓의 후일담

기사승인 2015-10-31 09:00:55

"[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영화 ‘특종:량첸살인기’(이하 특종)는 제목과 포스터, 배우만으로는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파악하기 쉽지 않은 영화다. 주인공인 사회부 기자 허무혁 역을 맡은 조정석의 밝은 이미지와 영화 전반적으로 깔리는 블랙코미디는 잘 맞아떨어져 쉴 틈 없이 웃음을 준다. 하지만 단순히 웃기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연쇄살인범과 그를 쫓는 허무혁을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긴박감이 넘치는 장면도 많다. 그렇다고 블랙코미디와 스릴러가 만나 탄생됐다고 소개하기에도 어딘가 부족하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노덕 감독은 12년 동안의 집필 끝에 왜 이런 시나리오를 썼을까.

‘특종’은 해고 위기에 놓인 허무혁이 우연히 받은 전화 한 통으로 연쇄살인범의 자필 메모를 확보해 일생일대의 특종을 터뜨리며 시작된다. 하지만 특종인 줄 알았던 자필 메모가 소설 ‘량첸살인기’를 원작으로 한 연극 대사임을 뒤늦게 알게 된 허무혁은 급하게 범인의 필적을 흉내내 또 하나의 자필 메모를 만들어 사건을 덮으려 한다. 의도와 달리 사건이 더 커지자 경찰 수사망은 그를 중심으로 좁혀진다. 허무혁이 코너로 몰린 상황, 그런데 상황은 급반전된다. 지어낸 이야기 그대로 실제 살인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특종’은 괴물의 탄생을 그린 영화다. 허무혁이 지어낸 몇 줄의 이야기는 무차별로 살인하던 범인을 뚜렷한 목적의식을 지닌 괴물로 만들어냈다. 영화 중반 이후 첫 등장한 범인은 허무혁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내 만남을 유도한다. 범인은 허무혁 앞에서 처음 만났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가며 협상을 제안한다. 이에 허무혁이 놀라 뒷걸음질치자 범인은 말한다. 당신은 나를 이해하지 않느냐고.

흡사 ‘올드보이’와 유사하다. 오대수(최민식)는 자신이 내뱉은 말 때문에 이우진(유지태)이라는 괴물을 마주해야만 한다. ‘올드보이’가 자신의 뜻대로 믿는 거짓 앞에 진실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말하고 있다면 ‘특종’은 거짓이 진실을 잡아먹은 이후의 세계를 보여준다. 허무혁의 거짓에 매혹돼 잡아먹힌 이는 범인만이 아니다. 대중이 언론의 잘못된 보도를 그대로 믿는 것은 물론 진실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거짓의 뒤를 쫓는다. 예리한 수사로 누구보다 진실에 가까이 갔던 경찰마저 불분명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진실을 버리고 명확하게 눈앞에 나타난 거짓을 집어 든다.

‘특종’의 세계에서 진실은 허무혁과 범인, 오직 둘만 안다. 하지만 범인이 이미 거짓에 매혹됐기에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칼자루를 쥔 사람은 허무혁 뿐이다. 그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진실을 밝힐 것인지, 아니면 그 또한 다른 이들처럼 거짓의 세계에서 살아갈 것인지.


영화의 첫 장면에서 허무혁은 좁은 차 안에서 밤을 새며 다른 매체들과 취재 경쟁을 벌인다. 그렇게 고생하며 진실을 쫓던 허무혁에게 돌아온 것은 광고주의 부당한 압력으로 인한 징계 처분이었다. 허무혁에게 진실은 오히려 거짓보다 나쁜 결과를 불러오는 선택지였고, 사건이 진행될수록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실만을 깨닫게 해 줄 뿐이었다. 결국 그는 희대의 오보를 만들어낸 것도 모자라 자신의 손에 피까지 묻힌 진실을 고백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특종’은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뉴스를 비추며 막을 내린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또한 진실이 거짓에 얼마든지 잡아먹힐 수 있는, 혹은 이미 잡아먹힌 세계가 아니냐는 감독의 메시지는 긴 여운을 남긴다. 허무혁 역을 맡은 조정석의 연기는 안정적이고 빛나는 장면도 많지만 후반부까지 존재감을 이어가지는 못한다. 지난 22일 개봉. 15세 관람가. bluebell@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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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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