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프롤레타리아 여고생’을 위한 작은 변명

[친절한 쿡기자] ‘프롤레타리아 여고생’을 위한 작은 변명

기사승인 2015-11-05 16:20:55
사진=페이스북 사과문 캡쳐.

[쿠키뉴스=이다니엘 기자] 철학자이자 사학자인 미셸 푸코는 그의 대표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역사는 직선적인 진보사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유롭지만 회의적인 과정”라고 말했습니다. 역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발전했거나 단선적인 진화과정을 거친 게 아니라, 개인이나 집단 권력의 의도에 의해 특정 지어졌다는 것이죠.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역사에 대한 논쟁을 바라보는 관점, 그 논쟁의 대처 방식에 대한 관점…. 모든 것이 다양합니다.

경기도 김포 통진고에 다니는 한 여고생, J양의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 발언이 근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국정교과서가 확정 고시되자 이 학생은 “사회구조와 모순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 뿐”이라는 다소 거센 발언으로 이슈를 불러일으켰죠.

이후 프롤레타리아란 용어 내의 의미에 대해 ‘일체의 자본주의적 관계를 소멸하고 계급 없는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해나가는 과정’이라는 지적이 거듭되자 그 여고생은 “갈등론의 출발점인 사회는 대립하는 두 계급이 존재하고,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각 계급이 힘을 모아야 한다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며, “적절하지 못한 단어로 여러분들을 불편하게 해드려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란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J양은 현재 ‘철부지’로 낙인찍혀 악플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리플에 ‘알못은 아닥(알지 못하면 닥쳐라)’, ‘통진고에 전교조 비율이 높다더니 이유가 있었네’ 등 원색적인 비난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습니다.

J양이 선택한 단어가 부적절한 해 보이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했던 건 맞습니다. 소신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적절한 단어선택은 그만큼 중요하죠.

그렇다고 J양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한 의미를 ‘틀렸다’고 단정 지을 순 없을 겁니다. 사과문에서도 밝혔듯, J양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의미로 하려던 말이다”라 의도를 분명히 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를 득달같이 몰아세우는 힐난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것은, 그녀가 목에 걸고 있던 피켓, “나는 그저 역사다운 역사를 원한다” 때문은 아닌지 염려됩니다.

‘역사’ 그 중에서도 ‘근현대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입니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격동의 시간이었습니다. 큰 굴곡이 있었고, 한 단어로 표현하면 한(恨)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같은 민족임에도 가해자가 있었고 피해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3자도 있었죠. 그들 모두가 후손을 낳았고 이 사회 속에 녹아들어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당연히 역사에 대한 이해도 상이합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을 산업화 등 발전의 과정으로 보는 이들이 다름 아닌 우리 내부에 있는 것 또한 같은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을 대변하는, 우리 민족을 위한 역사는 한 가지로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 민족을 위한’ 역사를 보존하고, 가르치는 것은 지금 이 사회에 뿌리내린 이들의 사명이고, 후세에 물려줘야 할 산물입니다.

때문에 역사를 단독적으로, 혹은 일률편적으로 다루는 것은 위험성이 큽니다. 어떤 의도에 의해 그 창구가 장악당한다면, 역사가 쉽게 왜곡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셸 푸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사라는 매개로 새로운 권력담론이 이 사회 저변에 깊이 깔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직 나이 어린 학생입니다. 한 여고생의 사회 현안에 대한 관심, 방관자에 머물지 않고 나름의 의견을 전달하려 했던 노력이 단지 용어의 실수가 있었다는 이유로 철부지의 헛손질로 폄하되고 선을 넘는 비난에 묻히지 않길 바랍니다. daniel@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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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니엘 기자
daniel@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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