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YS 장남’ 은철씨 모습 공개… 부축받으며 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 지켰다

[친절한 쿡기자] ‘YS 장남’ 은철씨 모습 공개… 부축받으며 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 지켰다

기사승인 2015-11-27 00:10:55
사진공동취재단

[쿠키뉴스=조현우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이 26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엄수된 국가장 영결식을 마지막으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 닷새 만에 치러진 영결식은 이날 오후 2시부터 1시간20분 동안 거행됐습니다. 부인 손명순 여사와 유가족, 이명박 전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헌법기관장, 주한 외교사절, 각계 대표와 시민 등 70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유지를 기리고 영면을 기원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로와 심한 감기 증세로 영결식에 참석하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박 대통령은 이날 낮 서울대병원 빈소를 다시 방문해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을 배웅하고 유족들을 위로했습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영결식에 불참했습니다.

영결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와 묵념, 고인의 약력 보고에 이어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의 조사와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추도사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습니다.

황 총리는 조사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평생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발자취를 우리 국민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김수한 전 의장은 추도사에서 “대통령님은 민주주의와 민권을 위해 모든 것을 남김없이 바치신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사셨다. 정치 역정을 함께한 많은 후배·동지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이 나라 정치를 바로 세우고, 염원하셨던 상생과 통합, 화해와 통일의 그날을 반드시 실현해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결식은 기독교·불교·천주교·원불교 순으로 종교의식이 진행됐고 생전 영상 상영과 헌화·분향, 추모공연에 이어 3군 통합조총대의 조총 발사와 조약 연주로 마무리됐습니다. 운구 행렬은 김 전 대통령이 46년간 살았던 상도동 사저와 내년 완공을 앞둔 기념도서관을 들렀다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으로 향했습니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TV 생중계로 영결식을 지켜본 네티즌들의 게시물이 실시간으로 쏟아졌습니다. 특히 김 전 대통령 장남인 은철(59)씨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자 비상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차남 현철(56)씨에 비하면 그동안 언론 노출이 거의 없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날 은철씨는 중절모와 선글라스를 쓴 모습으로 손 여사와 현철씨 사이에 앉아 부친의 마지막 길을 지켰습니다. 헌화·분향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는 가족의 부축을 받아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은철씨의 활동상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008년 김 전 대통령이 부친상을 당했을 때도 현철씨가 사실상 상주 노릇을 했고, 장남은 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은철씨와 관련해선 몇 가지 일화가 전해집니다. 은철씨가 결혼식을 올린 건 김 전 대통령이 신군부에 의해 가택 연금 중이던 1982년이었는데 당시 신군부는 특별히 김 전 대통령에게 은철씨의 결혼식 참석을 허용했지만, 김 전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나는 아버지 이전에 정치인”이라며 신군부의 가택연금에 항의하는 뜻으로 결혼식 참석을 거절한 것입니다. 결국 은철씨는 아버지 없이 결혼식을 치러야했고, 이후 미국으로 떠나 평생을 해외에서 은둔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MB 정부 시절 청와대 춘추관장과 홍보기획비서관 등을 지낸 이상휘 위덕대 부총장은 23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은철씨가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많이 아프다. 원래 건강이 안 좋은데다가 지금 몸이 아파서 빈소에도 거의 못 나올 상황에 있다”며 “정말 비운의 황태자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이 부총장은 1996년 일화도 털어놨습니다. 누가 전화로 부탁을 해 서울 사당동 허름한 술집에 가게 됐는데 은철씨가 만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통령 아들인 것을 술집도 몰랐고, 외상값도 많이 있었는데 술값을 못 내고 만취해 있어 술값을 내고 왔다고 합니다.

이 부총장은 청와대 경호팀이 와서 은철씨를 데리고 나갔다면서 “그 당시에만 하더라도 상당히 자신에 대해서 억울하다고 할까. 약간 기가 많이 눌린 듯한 느낌이 있었고 본인의 처지에 대해서 상당히 비관적인 면이 많이 보였다”며 “결국 아직까지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조현우 기자 기자
canne@kmib.co.kr
조현우 기자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