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최근 배우 김고은, 박소담, 이유영 등 한예종 출신 여배우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충무로 기대주’로 불리는 이들과 한예종 출신으로 함께 언급되는 한예리는 그러나 조금 다르다. 무용과 출신으로 이미 긴 시간동안 쌓아온 경력이 한예리를 ‘앞으로가 기대되는 유망주’보다 ‘준비된 배우’에 어울리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예리는 오는 3일 개봉하는 영화 ‘극적인 하룻밤’에서도 첫 로맨틱 코미디라고 믿기 힘들 만큼 자연스럽고 친근한 연기를 펼치며 묘한 매력을 드러냈다. 지난 1일 서울 팔판길 한 카페에서 만난 한예리는 작은 목소리로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가며 말을 이어갔다.
Q. ‘극적인 하룻밤’이 로맨틱 코미디 장르 첫 도전이다.
“지금까지 일부러 기피한 건 아니었어요. 로맨틱 코미디든 멜로든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장르였는데 제가 주인공 자리를 얻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길었던 거죠. 전과 달리 친숙하고 공감 가는 캐릭터로 많은 분들에게 가볍게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아요. 평소에는 ‘노팅힐’ 같은 영화를 상당히 좋아해요. 재밌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Q. 작품을 고르는 한예리만의 기준이 있다면.
“아직까지 ‘어떤 작품을 꼭 해야지’ 하고 미리 생각한 적은 없어요. 출연 제의가 들어오고 시나리오를 보면 그때 의욕이 생기는 것 같아요. 마음속에서 제가 좋아하는 어떤 부분의 스위치가 눌러진 것처럼 불이 켜졌을 때 집중을 하는 편이죠. 매번 스위치가 켜지는 부분은 달라요. 감독님일 때도, 미술일 때도. 배역일 때도 있었고 상대 역할일 때도 있었죠. 영화 ‘해무’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커다란 배를 상상했어요. 상상 속에서 그 배가 움직이는 모습이 매력적이었죠. ‘극적인 하룻밤’에서는 시후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이었고 궁금했어요. 내가 시후 역할을 맡으면 얼마나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을지 알고 싶었죠. 윤계상 선배님도 하신다고 하니까 ‘이렇게 좋은 기회는 또 없겠다’ 생각했어요.”
Q. 첫 장면부터 워낙 엉뚱한 캐릭터로 등장해서 몰입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연기톤을 어떻게 잡을지에 대한 얘기를 감독님과 많이 했어요. 결국 첫 등장하는 시후의 모습을 조금씩 다르게 해서 세 가지 버전으로 찍었어요. 나중에 감독님이 맘에 드는 버전을 고르고 그 모습으로 남은 장면들을 쭉 찍었죠. 다른 건 크게 문제되지 않았는데 앞부분의 장면들이 중요했어요.”
Q. 취업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힘들어하는 20~30대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린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많은 청춘들이 공감하려면 그 장면들이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이 이야기를 절대 무겁게 다루지 말자고 서로 얘기했어. 결국 사랑으로 극복해야 하는 얘기니까요.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그런 화두를 꺼낸 것만으로도 다른 영화들과 차별되는 점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Q. 최근 ‘N포 세대’라고 불리며 많은 것을 포기하는 젊은 청춘들이 많다. 여배우로서 한예리가 포기한 것이 있을까.
“아직까지 뭔가를 포기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포기했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거죠. 아마 많은 청춘 세대들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선택한 것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더 힘들 것 같아요.”
Q. 베드신에서 무릎을 다쳤다던데.
“떨어지면서 계단에서 살짝 짓눌렸어요. 큰 부상은 아니었어요. 제가 다쳤다는 얘기를 안 하고 진행해서 나중에 듣고 조금 놀라셨던 것 같아요. ‘쿨’하다는 분들도 많았지만, ‘쿨’ 하기는요. 제가 다른 영화들에서 던져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하하”
Q. 만약 시후처럼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결혼식에 갈 생각이 있나.
“절대 못갈 것 같아요. 헤어지고 친구처럼 편하게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가능할지도 잘 모르겠어요. 만약 그런 사이가 된다면 결혼식에도 갈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나를 일방적으로 뻥 찬 사람의 결혼식이라면 절대 못갈 것 같아요.”
Q. 최근 한예리를 비롯한 ‘한예종 라인’이 주목받고 있다.
“저는 같이 작업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이유영 씨랑 박소담 씨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는데 실제로 뵙게 되면 반갑게 인사하고 싶어요. 함께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이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여자 캐릭터 두 명이 등장하는 시나리오도 많이 없어서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Q. 같은 소속사인 윤계상과 호흡을 맞춘 소감은.
“많은 부분을 배우면서 했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들고 선배님께 찾아가면 이미 뭐가 불편해서 왔는지 아세요. 본인도 그 부분이 불편하다면서 그걸 이렇게 하려고 한다고 알려주시는 식이었어요. 회사에서 조진웅 선배님을 첫째 오빠, 윤계상 선배님을 둘째 오빠라고 불러요. 둘째 오빠답게 은근히 실속 있고 배려도 제일 많이 해요. 첫째 오빠가 밖에서 계속 일하는 동안 둘째 오빠는 집에서 가족들도 살피는 자상한 이미지라고 할까요. 첫째 오빠는 실제로 일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어요. 하하”
Q. ‘극적인 하룻밤’에 출연한 자신의 연기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부족한 부분도 많고 더 잘했으면 좋았겠다 싶은 장면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다 떠나서 많은 분들이 보실 수 있는 영화가 된 것 같아서 기뻤어요. 제가 연기적으로 더 나아지는 것이 이 작품의 목표는 아니었어요. 연기 욕심보다는 여배우 한예리의 매력, 아름답고 생기발랄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멀게 느껴지는 주인공이 아니라 내 옆집에 살 것 같은 친근한 인물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Q.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제가 출연하지 못해도 좋으니 한국 무용에 대한 좋은 작품이 나왔으면 싶어요. 한국 무용을 전공한 만큼 전통 무희나 춤꾼에 관한 좋은 영화가 나왔으면 하는 생각을 늘 갖고 있어요.” bluebell@kukimedia.co.kr 사진=박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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