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극적인 하룻밤’ 로맨틱 코미디가 이 시대에 적응하는 방법

[쿡리뷰] ‘극적인 하룻밤’ 로맨틱 코미디가 이 시대에 적응하는 방법

기사승인 2015-12-03 11:22:56

"[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전 여자친구가 헤어진 지 2개월 만에 결혼을 한다. 그녀의 결혼 상대는 주인공 정훈(윤계상)과 어울리던 친한 형 준석(박병은)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 싶지만 더 싫은 건 준석은 의사, 정훈은 기간제 체육교사란 사실이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정훈은 그들의 결혼식에 참석해 인증샷까지 찍는 쿨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결국 대낮부터 만취해 비틀거리고 있는 정훈의 눈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엉뚱한 여자 시후(한예리)가 나타난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시후를 따라 술자리가 이어진 끝에 두 사람은 극적인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이야기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극적인 하룻밤’은 전 여자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난 낯선 여자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평범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가 주목하는 건 연애도, 결혼도, 육아도 포기하는 ‘N포 세대’를 만들어낸 2015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극적인 하룻밤’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가 벌어진 사실을 이미 받아들인 2030세대의 연애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루며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둔 스위치를 건드리려고 한다.

현실에서도, 연애에서도 ‘을’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슬프거나 우울한 분위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시종일관 유쾌하고 가볍게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상처받기 두려운 마음을 감추고 쿨한 모습을 원하는 정훈과 시후가 서로의 몸에 끌렸다며 커피 쿠폰을 다 찍을 때까지 ‘몸친’ 관계를 이어가기로 약속하는 식이다. 연극 원작을 가져온 탓인지 다소 과장된 초반부와 정훈에게 조언을 아까지 않는 친구 덕래(조복래)의 존재감이 영화가 심각한 이야기로 빠지는 것을 막는다.

재도전의 기회를 주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청년 세대에게 결혼은 부담되는 일이다. 결혼으로 나아갈 수 없는 연애는 실패와 상처를 또 한번 맛보게 하는 사치스러운 일이거나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만드는 소모적인 일일 뿐이다. 그래도 ‘극적인 하룻밤’은 연애가 곧 실패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며 한번 질러보라고 말한다. 첫 장면부터 실패와 상처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두 사람이 어떻게 아픔을 치유해나가는지 유쾌하고 성실하게 그려내며 관객들을 설득한다. 기-승-전-해피엔딩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연애는 사치인 지금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적응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모범 사례다. bluebell@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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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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