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조선마술사’에는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있다. 마술도, 코미디도, 스릴러도, 액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랑이야기, 그 이상은 없다.
조선 최고의 마술사라 불리는 환희(유승호)는 우연히 절벽에서 한 여인을 만난다. 이 여인은 청나라의 11번째 왕자빈으로 혼례를 치르러 가던 청명 공주(고아라)로 가족들의 관직을 담보로 팔려가는 처량한 신세다. 환희와 청명은 서서히 가까워지다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은밀한 만남을 청명의 호위무사 안동휘(이경영)가 눈치 챈다. 또 어린 시절 환희를 학대했던 청나라 마술사 귀몰(곽도원)도 복수를 위해 환희에게 서서히 접근한다.
‘조선마술사’의 이야기 구조는 이중으로 구성돼 있다. 환희와 청명의 사랑이야기가 중심에 있고 안동휘와 귀몰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바깥을 맴돈다. 환희와 청명의 사랑이 깊어갈수록 주변 상황은 둘의 사랑이 얼마나 불가능한지 보여준다. 영화는 운명적인 만남이 운명적인 헤어짐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여러 번 강조하며 안타까운 감정을 이끌어낸다.
문제는 환희와 청명의 사랑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청명이 어린 시절 귀몰에게 학대당한 이후 쫓기며 살아가는 환희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도 아니고 청명이 환희와 깊은 사랑에 빠질 만한 계기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 결과 영화가 전개될수록 환희와 청명은 힘든 현실에 투정하고 고집부리는 어린 아이 같은 존재가 된다. 덕분에 환희와 청명보다는 두 사람을 걱정하고 고민하는 주변 어른들의 모습에 더 눈길이 간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마술사라는 소재는 신선하다. 실제로 조선시대 장터와 마을을 다니며 춤과 노래, 곡예를 공연했던 남사당패에 ‘얼른쇠’라는 요술쟁이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얼른쇠는 단순한 마술들을 선보이며 서민들을 위로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에 ‘마술’이 꼭 등장할 이유는 찾기 힘들다. 청명은 환희가 마술사여서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다. 환희에게도 마술은 돈을 버는 수단일 뿐 큰 애착은 없어 보인다. 결국 마술의 쓰임새는 오프닝 장면을 화려하게 만들고 액션 장면의 살인 도구로 쓰이는 데 불과하다.
‘조선마술사’는 아역 배우 출신 유승호가 군복무를 마친 후 선택한 첫 영화로 화제를 모았다. 성인 배우로 발돋움해야 할 시기의 유승호가 왜 어린 이미지의 환희 역을 맡았는지 모를 일이다. 당찬 이미지의 고아라도 내면에 아픔이 있는 비련의 공주 역할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대신 죽은 딸에 대한 기억을 청명 공주에 투영하며 고뇌하는 이경영과 복수를 위해 거침없이 전진하는 곽도원의 연기는 충분히 빛난다. bluebell@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