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50년 전과 지금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
지난해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수 존 레전드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셀마’의 주제곡으로 주제가상을 받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킹 목사가 흑인 인권을 위해 행진했던 1960년대와 지금을 비교하며 아직도 흑인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날 존 레전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2번째로 트로피를 받은 흑인이 됐습니다.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여한 트로피는 총 2900여개에 달합니다.
올해 열리는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도 지난해에 이어 백인들의 잔치가 될 전망입니다.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지난 13일 남녀 주연·조연상 후보 20명의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명단에서 흑인 배우의 이름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백인 배우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른 것입니다. 네티즌들은 SNS에서 ‘오스카는 너무 하얗다(#OscarsSoWhite)’는 해시태그를 퍼뜨리며 아카데미를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올해 들어 유독 백인 배우들의 활약이 뛰어났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영화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의 이드리스 엘바, ‘컨커션’의 윌 스미스, ‘헤이트풀8’의 새뮤얼 잭슨 등은 유력 수상 후보로 점쳐질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이드리스 엘바와 윌 스미스는 지난 10일 열린 제7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후보에 올랐습니다.
일부 흑인 감독과 배우들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영화 ‘똑바로 살아라’, ‘말콤 X’ 등을 연출했던 스파이크 리 감독은 자신의 SNS를 통해 “백합처럼 하얀 아카데미 시상식을 지지할 수 없다”며 “2년 연속으로 후보 40명 중에 유색인종이 하나도 없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어 “흑인 배우들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백인 잔치에 머무를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윌 스미스의 아내인 배우 제이다 핑킷 스미스도 보이콧에 동참했습니다. 제이다 핑킷 스미스는 SNS를 통해 “유색 인종은 존엄하고 힘 있는 집단”이라고 강조하며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TV로도 보지 않을 생각”이라는 내용의 영상 메시지를 올렸습니다. 또 “아카데미 시상식은 지금처럼 버려두고 우리는 다른 식으로 행동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후보가 선정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 6000여명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아카데미 회원은 작가, 배우,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음악감독, 미술감독, 편집기사 등 영화인 출신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후보를 선정할 때도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자신이 속한 부문에만 투표해야 합니다.
문제는 아카데미 회원의 백인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입니다. 미국 언론 LA타임스가 2012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아카데미 회원의 94%가 백인이고 77%가 남성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흑인 회원은 2%에 불과하고 라틴아메리카 출신 회원은 이보다 더 적다고 합니다. 아카데미 측은 지난해 6월 신입 회원 322명을 받아들이며 인종과 국가의 다양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보였지만 결과에 큰 영향은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아카데미 측은 보수적이고 편향된 인식을 가진 자신들의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인적 구성을 다양화하는 등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했지만 속도는 느립니다. 아이작스 위원장은 “비통하고 실망스럽다”면서 “변화는 우리의 기대처럼 빨리 오지 않는다. 우리는 더 빠르게, 더 훌륭하게, 더 많은 것을 실행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매년 시청률이 하락하고 있는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다음달 28일 열립니다. bluebell@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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