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저 오늘 웬만하면 그쪽이랑 자려고요.”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 ‘그날의 분위기’에서 재현(유연석)이 KTX에서 처음 만난 수정(문채원)을 향해 건네는 대사입니다. 실제 상황에서 처음 본 남성이 이렇게 말한다면 여성 입장에서는 어떤 느낌을 받을까요? 영화에서 수정은 참다못해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 보는 여자한테 ‘원나잇’이니 뭐니. 그거 성희롱이에요”
불쾌함을 느낀 건 수정만이 아니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파격적인 대사와 이른바 ‘원나잇 스탠드’ 제안을 거절한 수정이 ‘철벽녀’로 묘사되는 것을 두고 ‘불쾌하다’는 반응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페이스북 커뮤니티 ‘메갈리아4’는 “처음 본 남자가 섹스하자고 조르는 것을 거부하는 여자에게 ‘철벽녀’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안타깝다”며 “‘술 앞에서도 경계를 풀지 않는 그녀’라는 내용의 예고편은 더 가관”이라는 글을 ‘그날의 분위기’ 포스터 사진과 함께 올렸습니다.
영화 칼럼니스트 듀나는 SNS를 통해 “척 봐도 상습적인 성희롱범을 멋있는 남자로 만들려 하니 영화가 꼬일 수밖에 없다”며 “남자의 태도도 마음에 안 들지만 그런 남자를 멋있다고 우기는 영화의 태도는 더 맘에 안 든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날의 분위기’에 출연한 배우 문채원도 최근 인터뷰에서 “첫 만남에서 ‘저 그쪽이랑 자려고요’라고 하는 건 정말 좀 그렇지 않냐”며 “현실에서 그랬다면 뺨이라도 때리고 싶을 텐데 요즘 세상이 너무 무섭다. 그냥 ‘죄송합니다’라고 하면서 난청인 척 할 것 같다”고 솔직한 의견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의 이 같은 의견과 다르게 ‘그날의 분위기’를 일명 ‘여혐’ 영화로 낙인찍는 분위기에 반대하는 분석도 있습니다. 포스터나 예고편 같은 마케팅적인 요소에는 문제가 있지만 실제 영화는 오히려 여성 중심적이라는 것이죠.
영화평론가 황진미는 칼럼을 통해 “성희롱에 가까운 제안을 받은 수정은 당혹스러워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쾌하다거나 폭력적으로 느끼지는 않는다”며 “모호한 감정을 내세우며 애매하게 지분거리는 게 아니라 ‘오늘 밤 같이 자자’는 명쾌한 요구와 함께 분명한 동의를 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황진미는 “평범한 성의식을 지닌 여성이 오래 사귄 연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나잇 스탠드를 경험하는 과정을 거부감 없이 보여준다”며 “그 감정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이것은 영화가 여성 중심의 서사를 취하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네티즌은 “남성성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원나잇 스탠드 성공 후기’가 아니라 여성성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멜로 영화’에 가깝다”며 “유치한 마케팅이 영화 전체를 ‘여혐’으로 낙인찍히게 만든 주범”이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일부분을 떼어놓고 무조건적인 비판을 가해선 안 될 일입니다. 예고편이나 포스터를 보고 영화 전체가 문제인 것처럼 확대 해석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죠. 하지만 논란을 예상하지 못한 제작진 측의 문제가 더 크지 않을까요. 관객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사전에 신중히 검토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bluebell@kukimedia.co.kr
[쿠키영상] "아름답다"는 말에 진짜 아름다워지는 사람들...'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적 실험
[쿠키영상] 수영장서 놀고 있는데, 거대한 코끼리가 눈앞에 떡!...여긴 어디?
[쿠키영상] 강도 깜짝 등장에 오줌 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