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장윤형 기자] “면역항암제가 폐암에 효과가 좋다는데 하루 속히 건강보험급여 적용이 돼서 아버지 암치료에 쓰일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폐암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인 60대 아버지를 둔 아들 김지석(가명)씨의 메일에는 절박함이 묻어나있다. 그는 기자에게 면역항암제가 어느 시기쯤 ‘건강보험 급여’로 적용될 수 있을지를 물었다. 좋은 신약이 국내에 들어왔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이 약이 아직은 병원에서 치료제로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는 절망했다고 한다. 그나마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주요 대학병원에서 임상시험 대상 환자인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다.
최근 면역항암제가 폐암에 좋은 효과를 보인다는 임상결과가 발표되면서 국내 암환자들은 기대를 걸고 있다. 옵디보, 키트루다 등의 면역항암제는 오는 5월 안으로 폐암치료제로 쓸 수 있도록 식약처 허가를 앞두고 있다. 다만 비싼 약값은 여전히 환자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인정했듯, 한국이 선진국인 미국을 능가하는 제도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국민건강보험제도’다.
정부가 신약 등 치료제에 대해 건보를 적용하게 되면, 환자는 이 중 5%만 부담하고 나머지 95%는 정부가 지원한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항암제들이 건보 적용이 안돼 고가의 약값 부담으로 환자들이 생명연장의 기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좋은 치료 효과를 보이는 약이라도 약값이 100% 본인 부담이라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은 치료를 망설일 수 밖에 없다. 이와 더불어 신약에 대한 경제성평가 제도와, 위험분담제도 역시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마법의 약’이라 불리는 면역항암제의 경우 건보 적용 이슈가 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면역항암제의 1회 투약 비용은 약 1000만원에 육박한다. 현재 면역항암제는 국내에서 비급여이기 때문에 환자가 고가의 약값을 전액 지불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렇다 보니 건보 적용이 될 경우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한계에 부닥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1년에 100명의 환자가 면역항암제 10회를 투여해야 한다고 가정하면, 100억이 약값이책정된다.
그중 정부가 95%를 부담할 경우에도 약 95억의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 특히 면역항암제의 경우 흑색종, 폐암, 위암, 대장암 등 다양한 암에 적응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투약은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건보 재정은 기하급수적으로 바닥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경제 논리로만 따져서, 좋은 치료제를 정부에서 보장해주지 않는 것도 환자들의 치료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된 건강보험 적용 5% 일괄적용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의사는 “건보 적용이 되는 모든 치료제에 대해 5% 환자부담으로 일괄 적용할 것이 아니라, 건보재정의 한계를 인정하고 필요에 따라 일부 치료제는 환자 본인 부담을 조금 높이되, 치료제를 빠르게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며 “건강보험제도가 좀 더 유연하게 변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비급여 신약에 대한 개선책을 오랫동안 검토하는 사이, 수많은 환자들이 비용 부담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숨을 거두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정부는 선택해야 한다. 건보 재정의 한계 속에서 더 많은 환자가 신속하게 좋은 신약을 얻을 수 있는 묘수를 말이다. 정부가 망설이는 사이에 오늘도 환자들은 암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vitami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