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천우희 “‘곡성’, 대혼돈 주는 영화… 출연 분량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쿠키인터뷰] 천우희 “‘곡성’, 대혼돈 주는 영화… 출연 분량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기사승인 2016-05-11 09:47:55

[쿠키뉴스=이준범 기자] ‘곡성’은 미스터리한 영화다. 영화는 상영시간 156분 내내 손에 잡히지 않는 사건과 인물의 궤적을 쫓는다. 또 상영을 마친 이후까지 괴기한 잔상이 머릿속에 남고 이야기의 실마리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

‘곡성’에서 가장 신비한 인물 무명 역을 맡은 배우 천우희를 지난 6일 오전 서울 팔판길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녀에게도 ‘곡성’이 미스터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천우희는 “시나리오를 읽고 처음 느낀 건 ‘대혼돈’이었다”며 “주변 사람들이 영화 어떠냐고 물어보면 대혼돈을 주는 영화라고 설명한다”고 말했다. 촬영 현장이 힘들기로 유명한 나홍진 감독의 작품임에도, 사람인지 귀신인지도 불분명한 역할임에도,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배우 천우희는 자진해서 대혼돈 속으로 뛰어들었다.

천우희가 연기한 무명은 끝까지 알 수 없는 캐릭터다. 인물에 대한 묘사도 거의 다뤄지지 않는 건 물론 등장할 때마다 상황이 바뀌어 선악을 구분하기도 힘들다. 천우희는 “인물에 대한 확신 없이 모호하게 연기해야 하는 점이 고민이었다”며 “인물에 대해 조사하기도 어렵고 주변의 경험을 물을 수도 없었던 점도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 인물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처음엔 와 닿지 않았어요. 등장하는 부분이 한정적인 데다가 변화는 어떻게 주고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발산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막 고민하다가 현장에 가면 다 잊고 정말 단순하고 원초적으로 연기했던 것 같아요. 무명은 연기나 감정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존재하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속에서 존재하고만 있다면 이 인물에 대해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거의 무(無), 혹은 자연의 상태로 현장에 갔던 것 같아요.”



나홍진 감독의 전작 ‘추격자’, ‘황해’에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만큼 천우희의 주연 캐스팅은 이례적인 일이다. 천우희는 나 감독이 촬영 초반에 “여자는 우주 만물의 근원이야”라고 언급한 한마디 말을 듣고 어떤 느낌으로 어떤 에너지를 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나 감독이 천우희를 선택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감독님과는 촬영을 다 끝내고 술자리, 혹은 개인적인 자리에서 더 얘기를 많이 했어요. 감독님에게 들은 말 중에 감사한 말 하나가 기억에 남아요. 감독님은 여배우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제한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셨대요. 그런데 저랑 작업을 해보고 나서 그런 생각의 틀이 깨졌다고 말해주시더라고요. 감독님도, 선배님들도 열의가 엄청나시기 때문에 저도 지지 않으려고 만만치 않게 열심히 했거든요. 그 얘기를 듣고 ‘맞아요, 감독님. 여배우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어요. 기분 좋더라고요.”

천우희는 최종 편집본에서 편집됐지만, 이번 영화에서 액션 장면에 처음 도전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여러 영화에 출연한 천우희의 액션 장면을 본 기억은 없다. 하루 종일 산에서 맨다리로 구르는 힘든 장면이었지만, 그녀는 재밌었다고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

“정말 하루 종일 찍었어요. 산에서 끌어내려지고 기어 올라가는 장면을 맨다리로 했죠. 처음엔 아대를 착용하고 하려 했는데 카메라에 다 잡히더라고요. 감독님이 ‘미안한데 이번만 눈 딱 감고 딱 세 번만 없이 아대 없이 하자’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 세 번이 세 번이 아니었죠. 하하. 하루 종일 찍었는데 저도 집중하다 보니 아픈 줄도 모르고 찍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인사하고 숙소에 가서 샤워를 했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이건 사진으로 남겨야겠다 싶을 정도로 상처가 너무 많이 났거든요. 한 달 동안 바지를 입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프더라고요. 그 장면이 없어져서 아쉽긴 하죠. 그래도 감독님이 그런 선택하신 이유가 분명하니까 괜찮아요. 저는 정말 괜찮은데 오히려 감독님이 더 신경 쓰시면서 계속 미안하다고 그러세요.”

‘곡성’에서 천우희가 등장하는 분량은 생각보다 더 적다. 나중에 20회차까지 늘어났다지만 처음 계획된 촬영은 10회차 밖에 없었을 정도다. 분량이나 비중이 적은데도 출연을 곧바로 결심한 이유는 뭘까. 천우희는 ‘곡성’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오직 ‘시나리오의 재미’라고 말했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항상 똑같아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이 제일 중요하죠.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그 순간의 직관으로 결정해요.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곡성’ 시나리오를 받고 ‘이거 하고 싶다’, ‘너 내 거다’라고 생각했어요. 분량이나 비중처럼 겉으로 보이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아요. 하고 싶은 캐릭터나 작품성을 생각하지도 않아요. 시나리오가 재미있다는 게 가장 중요하죠. 저한테 시나리오의 재미가 느껴진다면 관객들에게도 재미가 느껴질 거라고 생각해요.”

‘곡성’은 낯선 외지인이 나타난 후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 사건들로 인해 마을이 발칵 뒤집히자 모든 사건의 원인이 그 외지인 때문이라는 소문과 의심이 퍼지며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영화다. 11일 개봉. 15세 관람가. bluebell@kukimedia.com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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