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기념곡 제정 놓고 국론분열 양상…여-야 모두 재고요청
[쿠키뉴스=조민규 기자]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놓고 여-야 갈등뿐 아니라 국민들 간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은 5·18민주화운동이 1997년 정부기념일로 제정된 이후 정부기념식에서 2008년까지는 ‘제창’을 해왔으나 2008년 정부기념식 직후(이명박 정부 첫 해) 일부 보훈·안보단체의 문제제기에 따라 2009년부터 2010년까지 2년간은 본행사에서 제외하고 식전행사에서 합창단이 불렀다.
정부는 2013년에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 제창 논란 해소를 위해 3·15의거 기념일에는 3·15의거의 노래를, 4·19혁명 기념일에는 4·19의 노래를 제창하듯이 5·18민주화운동에 맞는 5.18의 노래를 제작해 제창하려 했으나 야당 및 5·18관련 단체에서는 새로운 노래 제작을 강하게 반대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2016년 현재까지도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제창과 관련해 찬성과 반대 논란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 정부입장을 정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기념곡 지정·제창과 관련 찬성쪽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1982년 4월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의 추모곡으로 불려진 노래로 5·18민주화 운동의 정신과 역사를 담은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5·18기념식에서 제창해야 하며, 정부에서 ‘국민통합 저해’를 이유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은 5·18민주화 운동 정신을 폄훼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쪽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특정단체의 민중의례에서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하지 않고 ‘민주열사에 대한 묵념’을 하고 애국가 대신 부르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노래를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가 참석하는 정부기념식에서 부르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북한이 1991년 5·18을 소재로 제작한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해 노래제목과 가사내용에 나오는 ‘임’과 ‘새날’의 의미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 역시 기념곡 지정은 5대 국경일, 46개 정부기념일, 30개 개별 법률에 규정된 기념일에 기념곡을 지정한 전례가 없고 ‘애국가’도 국가 기념곡으로 지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지정할 경우 ‘국가 기념곡 제1호’라는 상징성 때문에 또 다른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본 행사인 기념공연에서 합창단이 합창하고, 부르고 싶은 사람은 따라 부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부르지 않을 수 있도록 “참석자 자율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논란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하고 있고 국가보훈처는 전했다.
이에 국가보훈처는 오는 18일 오전 제3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거행한다고 밝혔다. 또 행사의 마지막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을 공식순서에 포함하고, 합창단 합창 시 원하는 사람은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참석자의 자율의사를 존중하면서 노래에 대한 찬·반 논란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의 이러한 입장이 발표되자 야권에서는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16일 현안브리핑을 통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관련 보훈처 입장 발표는 지극히 실망스럽다. 도대체 청와대 회동은 왜 했는지 모르겠다. 국민들 보기 부끄럽다. 합창, 제창의 문제가 아니다. 80년 광주는 국민의 삶이고 문화이고 역사”라고 말했다.
이러한 입장이 알려지자 인터넷상에서는 네티즌 간 갑론을박이 거세다. A씨는 “김진태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두고 "부르기 싫은사람에게 제창강요는 인권침해"라고 했군. 김진태다운 망언이지만 나는 애국가 안불렀다고 종북타령이나 하고 아이들 물속에 수장하고 그이유나 알려달라는 가족들 외면하는 니들이 인권을 입 담을 처지는 아닌듯한데“라는 의견을 밝혔다.
반면 B씨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임’이 누구이며 일성이의 돈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합창’ ‘제창’에 목을 매는 자들이 많구나. 자유대한민국의 떳떳한 시민이라면 어찌 이보다 더 미칠 수가 있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야당은 강하게 비난하는 입장을 잇달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 같은 내용을 국민의당에만 통보한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했다. 우 원내대표는 16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34차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청와대는 국민의당하고만 파트너쉽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왜 이 문제를 국민의당에만 통보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대통령의 지시를 보훈처장이 거부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강하게 불만을 표시했다.
이어 “이 문제에 대한 진실을 청와대는 밝혀주기 바란다. 대통령이 지시한 것이 맞나. 보훈처장이 거부한 것인가. 아니면 지시한다고 야당 원내대표에게 말해놓고 사실은 지시하지 않은 것인가”라며 “보훈처장은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재검토하시기 바라고 청와대가 다시 지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의당도 논평을 통해 ‘국민의 조그만 요구조차도 수용하지 못하는 대통령께 소통과 협치를 기대할 수 있는가’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 또는 제창에 대해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이미 자기 차원을 떠난 문제라고 밝힌 바 있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금요일 청와대 원내대표 회동에서 전향적인 조치를 지시한 바 있다”라며 “대통령은 오늘 국가보훈처를 통해 기념곡 지정뿐만 아니라 제창 조차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소통과 협치를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과 3당 원내대표 간 회동 결과에 대해서 잉크도 마르기 전에 약속을 파기한 것이고, 광주시민과 국민들의 뜻을 저버린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와 함께 “국민의당은 대통령께 재고를 촉구하면서 3당 공동으로 국가보훈처장에 대한 해임촉구결의안을 제출하는 등 후속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도 “보훈처의 결정은 독재에 항거한 5·18정신에 부합하는 결정이 아니다. 독재가 시작된 5·16쿠데타에 어울리는 결정”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강상구 대변인은 16일 “오늘 보훈처의 발표로 박근혜 대통령이 총선 민심은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과 독주 선언’이다. 3당 원내대표 회동 등으로 시작된 것처럼 보였던 박 대통령의 ‘소통과 협치’는 작심3일로 끝났다”라며 “이로써 또 다른 갈등과 국정운영의 난맥이 예상된다. 모두 다 박 대통령의 책임이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린다”라며 향후 국정운영의 험로를 예고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 역시 상무위원회에서 “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지 않기로 한 것은 5.18민주항쟁에 대한 부정이며, 민주주의를 짓밟는 행위”라며 “3당 원내대표 회동 결과를 거스르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총선 민심을 정면으로 농락한 것”이라고도 비난했다.
민중연합당도 16일 논평을 통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 박근혜 정부가 국론분열의 핵이다’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민중연합당 정수연 대변인은 국론 분열의 발원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라며, 종편을 앞세워 민중항쟁의 역사를 왜곡하고 5·18민주화 운동 정신을 폄하해 여론을 호도해 놓고 마치 노랫가락의 잘못 인양 국론 분열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빌미로 광주정신을 훼손하는 것은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야당에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협치의 대상도 호남구애작전의 소재도 아니라며, 진정한 광주정신은 압제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자 민주와 평화의 미래를 열어갈 시대정신이 바로 광주정신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새누리당도 마찬가지. 새누리당 민경욱 원내대변인은 16일 원내 현안관련 논평을 통해 “정부가 5.18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며 “지난 5월 13일 청와대 3당 대표회동에서 대통령께서 국론분열을 피하는 좋은 방법을 검토하라고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훈처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광주에서 희생당한 이들을 위한 5.18 추모행사를 보훈처가 주관하고 있다. 이는 5·18이 민주화를 위한 광주시민들의 정당한 의거였다는 역사적인 평가에 기반하고 있다“며 ”기념식의 내용과 예식절차에 대해서는 유족들과 광주시민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것이냐도 마찬가지다. 5.18까지 아직 이틀이 남았다. 보훈처의 재고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올해 기념식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 등으로 2년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5·18 3개 단체(부상자회, 유족회, 구속부상자회)와 5·18행사위가 기념식에 모두 참석할 예정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운동 중 희생된 윤상원과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1981년 작곡됐다. 가사의 원작자는 백기완, 작곡자는 김종률이다. 1981년 소설가 황석영과 당시 전남대학교 학생이었던 음악인 김종률 등 광주 지역 노래패 15명이 공동으로 만든 노래극 '넋풀이 -빛의 결혼식'에 삽입됐다. kio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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