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장윤형 기자] “2000년대 초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제네릭(복제약)이나 개량신약 개발에만 집중해 왔습니다. 당시 항체의약품 분야는 미국, 유럽 등 수조원의 자금력을 가진 글로벌제약사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죠. 그때 우리는 바로 ‘이거다(바이오시밀러)’라고 무릎을 탁 쳤죠.”
김형기(사진) 셀트리온 대표이사(사장)는 신약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미래를 먼저 내다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0년대 초 ‘바이오산업이 뜬다’는 막연한 믿음으로 대우 출신 동료 10여 명과 ‘넥솔’을 창업했다. 넥솔은 셀트리온의 전신이다. 셀트리온은 2002년 회사를 설립한 후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조기에 예견하고 발 빠른 투자와 제품개발을 통해 글로벌 제약산업에서 100년 역사를 가진 회사들도 불가능하다고 말해왔던 항체의약품의 바이오시밀러(Biosimilar, 바이오의약품 복제약)를 개발해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2012년경이면 블록버스터급 ‘항체의약품’들의 특허가 만료된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당시 항체의약품은 전 세계에서 엄청나게 팔려나가고 있었거든요. 제네릭과는 달리 항체의약품은 구조가 복잡해 복제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고, 생산 기술부터 약 개발까지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합니다. 세포주 개발을 위한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 오늘날 세계 최초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램시마는 존슨앤드존슨의 류머티즘 관절염 등 자가면역질환 항체치료제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다. 셀트리온은 2013년 9월 유럽에서 램시마의 판매 허가를 받은데 이어 2014년 8월 미국 FDA에 램시마 허가를 신청했다. 램시마는 오리지널약과 효능을 동일하면서 가격은 20∼30%가량 싸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있다. 레미케이드의 미국 시장 규모는 5조4000억원, 세계 시장 규모는 12조원에 달한다. 관건은 결국 ‘미국 시장’이다. 셀트리온은 미국의 제약사 화이자와 손잡고 이르면 올해 3분기부터 램시마의 미국 판매를 개시할 예정이다.
김 사장은 “올해 말부터 램시마 단일품목으로 매출 1조원을 충분히 넘길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램시마가 ‘그렇게 대단한 약물입니까’라고 재차 묻자, 김 사장은 “불과 2∼3년전만해도 유럽의 의사들도 잘 몰랐지만 이제는 대부분이 램시마에 대해 알고있다. 이 약은 장기간 안전성과 효능 데이터가 충분히 입증된 약이며 유럽류마티스학회(EULAR) 등에서도 호평을 받은 약”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퍼스트 바이오시밀러가 갖는 파괴력과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1개 품목의 시장규모가 수조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글로벌제약사와 이미 많은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해외에서는 셀트리온이 개발한 약이라고 하면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SB2를 개발해, 미국 허가를 앞두고 있다. 또한 세계적 제약사인 베링거인겔하임, 노바티스도 개발에 착수하고 있다. 김 사장은 “세계 최초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고, 안전성을 입증하는데도 수년이 걸렸다. 제2, 제3의 바이오시밀러가 탄생한다고 해도 퍼스트 바이오시밀러를 따라오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오는 2020년까지 전세계에서 바이오시밀러가 건강보험재정의 약 110조 절약해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오리지널약은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환자에게는 약값 부담, 나아가 국가적으로는 건보재정에 부담이 큽니다. 램시마는 약가가 낮아 충분히 글로벌 시장에서 승산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바이오시밀러 개발 과정에서 역경도 많았다. 보수적인 한국 기업과 투자자들이 이름도 낯선 ‘셀트리온’이라는 회사에 투자하기를 꺼렸던 것. 김 사장은 “당시만 해도 회사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바이오시밀러라는 분야가 미개척 분야이다 보니 국내에서는 믿고 투자를 해주는 사람들이 드물었다”며 “오히려 믿어준 것은 싱가폴 등 해외투자자들이었다. 그때 확신을 갖고 투자한 곳들은 어마어마한 이득을 본 것”이라고 술회했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를 넘어 바이오의약품 신약 개발에도 도전한다. 현재 개발 중인 항체 독감치료제 ‘CT-P27’과 유방암 치료용 항체 ‘CT-P26’ 등은 바이오의약품 신약이다. 김 대표는 “결국은 신약으로 가야한다. 향후 5∼10년간 램시마 등을 판매해서 올린 매출을 항암제 등 신약 개발에 재투자하겠다”고 말했다. 셀트리온은 매출의 약 40%를 R&D(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향후 램시마를 비롯해 지난해 유럽 허가를 신청한 비호지킨스 림프종 치료제 트룩시마, 연내 허가 절차에 돌입할 예정인 유방암 치료제 허쥬마를 ‘퍼스트 무버 바이오시밀러’군으로 삼아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 나갈 계획이다. 김 사장은 “2018년 허가 신청을 목표로 휴미라 바이오시밀러인 CT-P17, 아바스틴 바이오시밀러 CT-P16을 후속제품군으로 선보이는 유방암 치료용 항체 ADC(Antibody-Drug Conjugate) CT-P26 등을 ‘바이오신약’ 군으로 개발하여 수조원 매출 기록하는 바이오기업으로 성장해 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최근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개발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천연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고급인력을 토대로 한 바이오제약 산업을 키우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수많은 기업들이 신약개발에 착수했다가 성과가 나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며 “신약개발은 장기적으로 보고 투자해야 한다. 당장은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10여년은 중도포기 하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셀트리온은 부단한 투자를 통해 작년 5조9000억원의 자산을 기록해 처음 대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끝으로 그는 “신약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내 바이오벤처산업에서도 ‘앵커기업’이 나와야 하며, 바이오 제약기업이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며 “수백억의 임상비용이 투입되는 신약개발의 특성상 파이낸싱(자금 조달)을 위한 벤처캐피탈이 필요하며 임상 실패를 할 경우 위험을 고려해 한국에도 이를 완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기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제는 ‘국내용’ 허가가 아니라 ‘국제용’ 허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 FDA 허가 과정에서 놀란 점은 전문인력이 각 분야마다 투입돼 자문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보다 전문인력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 FDA에 수준에 걸맞게 전문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newsroom@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