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비밀은 없다’ 스릴러 속에 숨겨진 발칙한 소녀들의 잔혹 동화

[쿡리뷰] ‘비밀은 없다’ 스릴러 속에 숨겨진 발칙한 소녀들의 잔혹 동화

기사승인 2016-06-15 11:25:55

[쿠키뉴스=이준범 기자] 뻔한 스릴러 영화인 줄 알았다. 공개된 포스터와 예고편 영상은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한 부부의 15일을 다룬 영화라고 말한다. 혼을 실은 마지막 반전에서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며 감동까지 전하는 영화를 예상했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영화는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나는 지방에서 펼쳐지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사라진 딸을 찾는 부모의 이야기다. 어머니인 연홍(손예진)은 모성애를 발휘해 끝까지 딸의 생존 흔적을 찾으려 애쓰고 비정한 아버지인 종찬(김주혁)은 실종된 딸마저 자신의 선거에 이용하며 갈등을 빚어낸다. 부모는 딸을 찾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을 한 명씩 의심하기 시작한다. 선거에서 경쟁하는 라이벌 후보부터 함께 일하는 사무처장과 운전기사까지 의심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건의 실마리는 쉽게 잡히지 않는다. 연홍은 밤을 새우며 딸의 이메일을 뒤지고 경찰의 수사기록을 구하며 더 적극적으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딸 민진(신지훈)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사건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연홍은 범인의 윤곽을 확인하기보다는 민진이 어떤 아이였는지 알아간다. 학교생활과 성적을 비롯해 친구, 선생님과의 관계, 좋아하던 음악 등 알면 알수록 완전히 새로운 민진의 모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연홍이 수많은 비밀을 들춰내며 민진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영부인을 꿈꾸던 자신의 욕망, 남편, 선거의 승리에 대한 관심은 멀어진다.

바뀌는 것은 연홍의 태도만이 아니다. 딸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던 실종은 딸이 어떤 아이인지 몰랐다는 의미로 변한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은 증오였고, 증오인가 싶었던 것은 사랑이었다. 연홍은 자신이 살고 있던 안정된 현실 세계와 불안정한 딸의 세계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 하지만 곧 어느 쪽에 진실이 있는지 깨닫게 된다. 스릴러를 기대했던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갑작스러운 전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음악과 사운드가 영상만큼 중요한 영화다. 전혀 다른 색깔의 두 가지 이야기를 상징하듯 영상과 소리는 가끔 어긋나고 폭발하는가 하면 사라진다. 동시에 두 이야기를 자유롭게 오가게 하는 가이드 역할을 수행하며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밴드 무키무키만만수가 직접 참여하고 안무까지 만들어줬다는 주제가는 러닝타임 내내 반복되며 기괴함과 사랑스러움을 함께 자아낸다. 독특한 색깔을 완성하게 만드는 ‘비밀은 없다’의 가장 큰 무기다.

배우 손예진의 연기는 당장 여우주연상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강렬하다. 하지만 그것이 역할 때문인지 손예진의 연기력 때문인지는 구분하기 힘들다.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민진과 미옥 역할을 맡은 두 소녀다. ‘곡성’의 김환희가 그랬듯, ‘비밀은 없다’를 보고 나면 두 배우의 이름을 찾아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경미 감독은 참고한 영화가 없다고 밝혔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자연스럽게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떠올리게 된다. 오는 23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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