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원격’ 정책에 보건의료계가 분개해 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원격의료에 이어 원격화상투약기 도입도 고려하면서 의료영리화로 가는 길이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의료계의 경우 수년간 정부와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도입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3차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보건복지부는 안전성·유효성 등을 확인했다고 밝힐 뿐 시범사업의 데이터 공개요구는 회피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의혹을 유발하고 있다.
또 현재와 같이 병원 중심의 의료체계를 갖는 우리나라에서 원격의료를 도입할 경우 의료이용을 늘려 국민에게 부담을 주게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커 사실상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
약사계는 올해 초 촉발된 ‘원격화상투약기’로 정부와 전면전을 앞두고 있다. 원격화상투약기는 화상투약기를 약국과 외부 경계에 설치하고 약국 밖에 있는 약사가 화상을 이용해 수면유도제, 피임약 등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지난 2월 열린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에서 거론됐다.
원격화상투약기 도입에 대해 일각에서는 환자안전의 토대가 되는 환자 대면원칙이 무너져 인터넷 약국·의약품 약국외 판매 확대는 물론, 원격의료 도입과 의료영리화의 단초를 제공하고 국민 의료비 부담을 상승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기계 오작동이나 조작오류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오투약 위험이 언제나 상존하며, 인터넷 해킹 등으로 인한 다양한 의약품 투약사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청소년의 건강을 위해 술·담배의 온라인 판매금지 등은 규제를 하고 있는데 국민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의약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면 의약품 사고와 오남용이 확대될 수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크다.
의약품은 구입 편의성보다 안전 사용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의약품 대면판매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사항이다.
대법원(2008도3423) 의약품의 주문·조제·인도·복약지도 등 의약품 판매를 구성하는 행위 전부 또는 주요 부분이 약국 또는 점포 내에서 이뤄지거나 그와 동일한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2005헌마373)도 의약품 판매장소를 약국으로 제한함으로써 약사가 환자 직접 대면을 통한 충실한 복약지도, 보관·유통과정의 변질·오염 가능성 차단, 중간과정 없는 의약품 직접 전달을 통해 약화사고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 입법 목적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원격 정책 논란의 중심에는 환자와의 ‘대면(對面)’이 있다. 원격의료의 경우 영상을 통해 환자의 진료를 하겠다는 것인데 현재의 영상시스템으로는 사실상 치료를 위한 진료가 아닌, 처방을 위한 진료에 그칠 수밖에 없다.
원격화상투약기도 환자의 연령 등 신상을 판단하기 어려워 적절한 투약이 아닌 의약품 판매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약사회는 화상투약기 도입추진에 대해 의약품 대면 판매 원체 훼손과 원격의료 및 의료영리화의 단초를 제공할 뿐 아니라 동네약국의 몰락과 약사직능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오히려 동네약국 활성화 정책과 국민 건강증진을 위한 의약품 안전사용 정책이 시급히 시행돼야 하고, 휴일 및 심야시간대 국민의 보건의료서비스 접근성 강화를 위한 공공병의원과 공공약국이 설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약사회 최미영 홍보위원장은 “화상으로 복약지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대면 원칙이 훼손돼서는 안된다. 약국들이 참여를 하지 않으면 된다고도 말을 하는데 대면에 원격이 포함된다면 인터넷 의약품 판매, 조제약 택배 등이 가능해져 결국에는 의료비가 상승될 것이다. 편의성 이면에 경제성이 있는 듯하다”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