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수 칼럼]
읍·면 주민들 공공하수도 때문에 집 못 지어서야…
요즘 제주도 읍·면지역 건축신고 담당직원들이 가중된 업무에 기진맥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 5월 제주도의 도시계획조례 개정안이 입법 예고된 뒤 주민들의 주택 건축신고가 폭주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다면 되레 그 생각 자체가 이상하다. 개정 조례가 시행되면 당장 집짓기가 어려워질 판인데, 어느 누군들 그 전에 허가를 받으려 하지 않겠는가.
자료에 따르면 제주시 7개 읍·면사무소에 접수된 건축신고는 지난 6월 한 달간 1200건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 1월 583건, 2월 538건, 3월 789건, 4월 770건이던 건축신고가 도시계획조례 개정안이 입법 예고된 5월 854건으로 늘어난데 이어 6월에 폭증 현상을 나타낸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제주도정 책임자들은 차분하게 생각해볼 소지가 있다. 단순히 골치 아픈 일이라거나 일시적으로 빚어질 수 있는 현상으로 넘길 일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주민들의 분노와 저항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도시계획조례 개정안이 입법 예고된 뒤 개정안에 반대하는 민원이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을 것이다. 이는 지난달 15일 예정됐던 공청회가 읍·면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파행으로 끝난 데서도 충분히 짐작된다.
그러면 왜 읍·면지역 주민들은 도의 도시계획조례 개정안에 이처럼 완강하게 반발할까. 개정안 건축물 시설기준에 그동안 동(洞) 지역에만 적용되던 공공하수도 관로 연결을 읍·면지역까지 확대해 적용하는 내용과 도로너비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못마땅한 내용이 들어 있긴 하지만 읍·면지역 주민들로서는 이 두 가지를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다. 특히 공공하수관로가 연결돼 있지 않으면 집도 못 짓게 한다는 사실을 주민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까지는 자체 오수정화시설을 하면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것이다.
물론 제주도가 지하수를 보전하고 난개발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조례 개정안에 이 같은 규제안을 담았다는 건 충분히 이해된다. 지하수 보전을 위한 불가피한 정책으로 보는 이들도 없지 않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주민들의 정서나 입장을 살펴보는 단계까지 가야 하는데 그까지 미치지 못했다. 사업을 목적으로 이들이야 하수관로 연결비용을 부담해서라도 건축을 할 수 있겠지만, 지역주민들 입장에서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다. 제주도 공공하수관로 구축이 크게 부족한 현실을 감안할 때 시내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 주민들은 아예 집 짓는 걸 포기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번 규제안은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중대 사안이다. 어쩌면 주민들의 생존과도 연결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주민들의 분노가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동안 각종 대규모 개발사업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입장을 보여 온 도정을 익히 봐온 주민들로서는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는 지난달 공청회장에 주민들이 들고 나온 피켓의 문구만 봐도 알 수 있다. ‘대기업의 난개발은 눈을 감고 서민들의 생존권에는 등을 돌리는가’ ‘대기업은 되고, 서민은 안되나’ 등이다.
사실 주민들로서는 도로너비 기준 규제안에도 불만이 많지만 공공하수관로 연결 규제안에 다소 묻힌 감이 있다. 현재 농어촌지역에서 8m 이상 도로너비를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지 못한 안이기 때문이다. 개정안에서는 세대 규모별 도로 폭을 10세대 이상∼30세대 미만은 6m에서 8m 이상으로, 30세대 이상∼50세대 미만은 8m에서 10m 이상으로, 50세대 이상은 10m에서 12m 이상으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어쨌건 이번 조례 개정안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은 절대 허투루 볼 사안이 아니다. 제2공항 건설이나 강정 제주해군기지, 도시첨단과학단지 등과 관련한 주민들의 항의나 시위는 일종의 ‘님비성’으로 볼 수 있지만 집을 짓고 사는 것은 바로 생존인 것이다.
다행히 제주도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주민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할 뜻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내친 김에 도는 도시계획조례 개정안 전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번 개정안이 제주지역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양동수 쿠키뉴스 제주취재본부 객원논설위원·건축사사무소 시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