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이제는 더 이상 개인의 못남이나 지질함을 젊다는 말 하나 뒤에 감출 수 없는 남성들이 최근 즐겨 쓰는 단어가 있다. ‘아재’다. 아저씨에서 출발한 이 마법의 단어는 당초 단순히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까지의 남성들을 가리키는 사투리였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대중 매체의 시류를 타며 별로 아저씨 같지 않은, 잘 생기고 자기 커리어 잘 챙기는 남자들을 은근슬쩍 앞에서 언급한 이들과 묶어버리는 놀라운 효과를 포함하게 됐다. 영화 ‘올레’(감독 채두병)는 그런 측면에서 ‘아재’와 비슷한 효과를 발휘한다. 신하균, 박휘순, 오만석이라는 잘 생기고 연기 잘 하는 배우들에게 지질한 캐릭터를 부여하며 ‘이것이 바로 평범한 우리 시대의 아재들’이라며 관객을 최면에 빠트리는 것이다.
나이가 서른일곱 살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대기업 과장 중필(신하균)과 13년째 사법 고시를 공부했지만 로스쿨 도입 소식에 좌절한 수탁(박희순), 그리고 방송국 간판 아나운서 은동(오만석)은 절친한 친구다. 이들은 각자의 이유로 인생에서 가장 ‘다 관두고 싶은 순간’에 대학 선배 부친의 부고를 듣고 제주도로 모인다. 본 목적은 상가 조문이지만 제주도까지 갔는데, 상가 조문만 하고 끝날 리 없다. 일단 빨간 스포츠카를 빌린다. 자연산 다금바리도 한 접시 먹는다. 그리고 럭셔리한 호텔을 빌리려고 하는데, 호텔이 만실이다. 20대 청춘들이 모이는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면서부터 이들의 제주행이 꼬인다.
‘올레’는 흔히 여행을 많이 해보지 못한 남자들이 여행길에 품는 판타지들을 징그러울 만큼 노골적으로 그려낸다. '하이퍼 리얼리즘(Hyper-Realism, 흔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정밀하게 복제해낸 표현 방식)'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정도다. 우연히 떠난 여행, 우연에 우연이 겹쳐 만나게 되는 예쁜 여인들. 이들은 여행지 기분에 젖어 평소라면 쳐냈을 아저씨들의 질척댐도 기꺼이 받아줌은 물론이다. 심지어 다른 게스트 하우스에서 어린 여자애들과 술을 먹고 오면 아침에 해장국을 끓여주겠다는 마더 테레사적 여인도 등장한다. 현실이라면 진상에 가까울 세 남자들의 행동은 ‘철없음’과 제주도의 예쁜 풍광으로 포장돼 버린다.
물론 마냥 어여쁘지만은 않다. 더 이상 철없으면 안 되는 나이인 이들이 직면한 현실은 멋진 여행에 비해 비참하기 짝이 없다. 나이 먹고 제 손으로 돈 한번 벌어보지 못한 수탁의 좌절, 가정이 없다는 이유로 명예퇴직 1순위가 된 중필 외에도 마냥 잘 나가는 사람으로 보이는 은동이 마주한 장벽은 크다.
안타까운 점은 영화가 입체적인 캐릭터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실을 장난치듯 풀어내겠다’는 ‘올레’는 캐릭터들의 현실을 상당히 직접적인 방식으로 지적하고, 결과는 정말 장난 같아져 버린다. 그러나 이를 메우는 것은 주연들의 연기다. 10년 전부터 호흡을 맞춰 왔다는 주연배우 세 사람은 기막힌 연기로 ‘지질이’ ‘진상’ ‘멍청이’를 오가며 관객들을 웃긴다. 주연배우들의 열연 때문에 ‘아재’ 관객들이 신하균, 박휘순 등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결과가 걱정될 정도다. ‘인생의 쉼표가 필요할 때’라는 영화의 슬로건처럼 관객들에게 적절한 쉼터가 될 수 있는 영화다. 15세가. 오는 2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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