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민규 기자] “국내 우울증 환자 90% 이상이 치료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약을 중단해 몇명이 마포대교로 갔는지 심평원과 복지부는 알고 있나”
29일 국회에서 열린 ‘4대 신경계질환(뇌전증, 치매, 파킨슨병, 뇌졸중) 환자들에 동반되는 우울증 치료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우울증 환자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기 위해 SSRI 항우울제의 급여기준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홍승봉 대한뇌전증학회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이날 발제를 통해 “신경계 질환에서 우울증은 흔히 동반되는 전형적 증상의 하나이며, 급격한 고령화로 신경계 질환 환자수는 급증하고 있다”라며 “SSRI 항우울제 Prozac 투여시 자살사고를 50% 감소시킬 수 있지만 정신과 전문의만 치료약 처방이 가능해 국내 우울증 환자의 90% 이상이 치료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약제급여기준에 따르면 비정신과 의사들은 SSRI 항우울제 처방을 60일 이상 할 수 없다. 때문에 현장에서는 우울증 치료를 시작하자마자 중단해야 되는 상황이 의료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우울증 환자의 정신과 의료 기준은 ▲2가지 이상의 SSRI, SNRI 항우울제를 투여해도 효과가 없는 경우 ▲양극성 장애가 의심될 때 ▲정신병 증상이 발생할 때 ▲자살사고가 있을 때 등인데 위 경우가 아니라면 신경계 질환에 동반되는 우울증은 신경과에서 SSRI 항우울제 투여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주장이다.
신경계 질환의 우울증은 기존 신경계질환이 악화될 수 있고, 재활에 큰 장애를 주며, 약물복용 등 순응도를 크게 저하시킨다. 또 의욕상실·감정조절장애 등은 보호자·가족뿐만 아니라 치료하는 의사도 힘들게 한다.
문제는 상황이 이렇지만 1차 치료약인 SSRI 처방제한으로 대부분 방치되고 있는 상태로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치료와 재활이 잘 안되고, 결국 의료비용과 사회경제적 비용이 폭증할 뿐 아니라 가정파탄, 실직, 감정폭발사고, 자살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홍승봉 회장은 “신경계 질환 우울증은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기존 신경계질환이 악화될 수 있고 치료에 방해가 된다. 삼환계 항우울제는 구갈, 의식·인지기능 저하, 심장독성, 저혈압 등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한다”라며 “신경계질환에서 특히 뇌전증 환자와 노인들은 작은 약물 부작용에도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가정파탄, 실직, 감정폭발사고, 자살로 이어져 SSRI 항우울제는 신경계질환 우울증 치료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SSRI 60일 처방제한 급여기준은 약값의 50~75% 감소로 그 존재 이유가 없어졌고, 임상적·학문적으로 분명히 개선이 필요하다”라며 “우울증 환자들의 접근성을 크게 제한하고, 적절한 치료기회를 박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심사평가원이 급여기준을 만들 때 약을 적게 쓰도록 하는 데만 신경 썼다. 보건복지부는 신경과 등 관련과 의견조회 없이 2002년 갑자기 고시했다. 심평원이 발의해서 복지부가 고시한 것”이라며 “그래서 약을 중단해 우울증 악화로 몇 명이 마포대교 갔는지 정부는 생각해봤나. 심평원은 이 같은 급여기준의 근거가 뭔가. 2002년 우울증 보장성 악화가 된 것이다.2002년부터 14년간 수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고통받았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하루가 급하다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분노해 했다.
또 우울증 빈도가 높은 4대 신경계 질환에 동반되는 우울증의 치료는 암환자와 같이 SSRI 항우울제의 60일 처방 제한에서 예외가 돼야 한다며, 신경계질환의 적절한 우울증 치료를 통해 기존 신경계질환이 빨리 회복되며 환자의 삶이 개선되고 의료비용 및 사회경제적 비용이 크게 절감된다고 밝혔다.
홍 회장은 “최근 해운대 사건으로 뇌전증 환자에 대한 시선이 안 좋아졌다. 이번 토론회는 환자 뿐 아니라 보호자도 고통 받는 상황에 치료를 어렵게 하는 급여기준을 개선하기 위해 것”이라며 “토론회를 준비하며 해외 학자와도 많은 이야기를 해봤다. 진료파트의 싸움이 아니고, 아무런 사적인 욕심도 없다. 우리가 보는 환자가 더 잘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