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정진용, 심유철 기자] ‘비선실세’ 최순실(60·여)씨 딸 정유라(20)씨의 특혜 의혹과 미래라이프 사업으로 내홍을 겪던 이화여대 학내 구성원들이 최경희 총장의 사임에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최 총장은 19일 사상 첫 이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의 기자회견을 앞두고 사퇴를 발표했다.
비대위는 19일 3시30분 서울 서대문구 이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 안위 보장, 재단개혁, 총장 사퇴 중 하나만 받아들여졌을 뿐 아직 두 개가 남아있다”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또 비대위는 “이 사안에 교수들이 나서지 못해 정말 미안하고 앞으로는 교수들이 대신 싸울 것을 약속한다”며 “외롭게 싸워온 학생들의 희생이 너무 컸다”고 덧붙였다.
교수협의회 공동의장 김혜숙 교수는 “기자회견을 앞두고 최 총장의 사임 소식을 접하게 됐다. 지난 2년 동안 최 총장의 노고를 잘 알고 있지만 학내 경찰력 투입 등 여러 문제들이 발생했다”며 “한편으론 기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캠퍼스에서 만난 이대 학생들도 최 총장의 사임 소식을 반겼다.
대학원생 김모(26·여)씨는 “진즉에 최 총장이 물러났어야 했다”며 “학생들이 결국 학교를 이겼다는 생각에 기쁘다”고 말했다.
간호학과 3학년 김미선(22‧여)씨는 “학생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 같아 기쁘다”면서도 “최 총장이 제대로 된 진상규명없이 꼬리 자르기식으로 사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정씨에 관련된 의혹들에 대해서 확실하게 종지부를 찍어야 될 것 같다”며 “사퇴할 땐 하더라도 사과는 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대 한 졸업생(29‧여)은 “근본적인 문제는 학생과 학교 간 ‘불통’이었다”며 “최 총장이 사퇴해서 기분은 좋지만, 정씨가 학교에서 불법적으로 누린 혜택에 대해서 진실을 밝히고 관련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대위 기자회견에서 재학생들은 집회에 참석한 교수들을 열렬하게 반겼다.
재학생 수 백명이 본관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지켜봤으며 교수의 발언이 끝난 뒤에는 박수로 화답했다. 학생들은 한목소리로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교수 백여 명과 학생 수백 명이 함께한 약 40여 분 간의 학내 행진 뒤에는 서로를 부둥켜안거나 눈물 흘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일부는 삼삼오오 모여 ‘해방이화’라고 써진 부채를 들고 인증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교수 협의회 사이트에도 환영한다는 뜻을 표하는 교수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날 사이트에는 “드디어 최 총장 사퇴, 새로운 이화의 시작이다" “새로운 이화여대, 기대됩니다”는 목소리들이 나왔다.
"윤후정 명예총장과 최측근들도 즉각 사퇴하라” “최 총장의 자진 사퇴였을까, 이사회보다 위에 있는 정유라의 지시였을까”는 반응도 있었다.
최 총장은 이날 ‘총장직을 사임하면서 이화의 구성원께 드리는 글’을 통해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추진으로 야기된 이번 학내 사태로 인해 구성원들이 더는 분열의 길에 서지 않고 다시 화합과 신뢰로 아름다운 이화 정신을 이어가자는 취지에서 사임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정씨의 특혜 의혹에 대해선 “최근 체육특기자와 관련해 입시와 학사관리에 있어서 특혜가 없었으며 있을 수도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한편 재학생들이 84일째 점거 중인 본관에는 이날도 밤을 새우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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