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정진용 기자]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개명 최서원·60)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 등 44개의 파일을 사전에 미리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JTBC는 24일 최씨의 사무실 컴퓨터에 저장된 200여 개의 파일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연설문 또는 공식 발언 형태의 파일은 모두 44개”라고 보도했다.
해당 문서가 최씨에게 전달된 시점도 주목할 만하다.
최씨가 파일을 받아본 시점은 길게는 공식 발언 사흘 전부터 몇 시간 전까지 다양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지난 2014년 3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이른바 ‘통일 대박론’을 발표했던 ‘드레스덴 연설’은 실제 연설은 28일 오후 6시40분이었지만 최씨가 전달받은 시점은 하루 전인 27일 오후 7시20분이었다.
드레스덴 연설문은 극도의 보안 속에 마련된 자료였다.
연설문뿐 아니다. 지난 2013년 7월23일 오전 10시에 열린 32회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모두발언도 회의 2시간 전인 오전 8시12분 최씨의 PC에 저장됐다. 지난 2013년 8월 전격 단행한 허태열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비서진 교체와 관련한 자료 또한 최씨는 하루 전에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JTBC는 “최씨에게 건네진 연설문은 최씨를 거친 뒤 내용이 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드레스덴 연설문’의 경우 모두 13쪽 분량의 원고 30여 곳에 붉은색 글씨가 적혀있었고 20여 곳은 박 대통령의 연설 당시 내용이 수정됐다.
JTBC는 “실제 연설문에는 최씨가 받아 본 연설문에 없던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추가됐다”며 “‘단순히 일회성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북한 핵 개발 추진 시 본격적인 외자 유치는 불가능하다’는 등의 문장은 삭제됐다”고 말했다.
이런 정황은 지난 19일 최씨의 최측근이며 ‘더블루K’ 대표이사직을 지낸 고영태씨가 JTBC와의 인터뷰에서 “최씨가 유일하게 잘하는 게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하는 것”이라며 “최씨가 고쳐놓고 문제가 생기면 애먼 사람들을 불러다 혼낸다. 비서관들만 불쌍하다”고 발언한 것을 뒷받침한다.
매체는 “최씨는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였던 시절부터 각종 내부 문건을 사전에 보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문서를 작성한 인사의 e메일 아이디를 분석한 결과 청와대의 대통령 최측근 참모”라고 전했다.
대통령 연설문이 사전에 청와대 내부에서도 공유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청와대는 이번 보도로 ‘비선 실세’ 논란에서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전날 국회 시정연설에서 꺼낸 ‘개헌 논의’ 카드도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21일 ‘최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정했다’는 보도에 대해 “정상적인 사람이면 믿을 수 있겠나”라며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부인했었다.
한편 청와대는 25일 JTBC 보도와 관련해 “다양한 경로를 통해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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