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익숙함과 새로움이 조화를 이뤘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감독 스콧 데릭슨)는 ‘아이언맨’이나 ‘어벤저스’가 제시했던 새로움은 없다. 예상할 수 있는 마블 스튜디오 식 영웅 서사 그대로다. 대신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거대하고 화려한 시각효과를 장착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 속으로 관객들을 밀어 넣는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각효과만으로도 관객을 압도한다. 시공간을 뛰어넘는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할 정도다. 건물이 여러 개로 갈라지고, 움직이는 땅이 기하학적인 문양을 그리며 서로 뒤엉킨다. 쉴 새 없이 중력 법칙을 거스르고, 사막과 대도시를 순식간에 이동한다. 현실 공간을 복사한 거울로 된 세계나 유체이탈 한 상태로 싸우기까지 한다. 나중엔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거나 미래로 움직이기도 한다.
주인공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마법과 가장 거리가 먼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다.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살리는 의사로서 자신의 실력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는다. 어떤 수술로도 두 손의 떨림이 사라지지 않자, 스트레인지는 기적적으로 하반신 마비에서 극복한 환자의 말을 듣고 네팔 카트만두로 향한다. 그곳에서 마법사 에이션트 원(틸다 스윈튼)을 만나 마법의 세계에 입문해 악의 무리와 싸우게 된다.
스트레인지는 마법을 배우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왜 자신이 세상을 지켜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입장에선 망가진 손을 고치러 왔다가 공부와 수련을 거듭하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가 슈퍼히어로로 거듭나는 과정을 쉬운 한 마디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개인의 고민과 새로운 세계를 통한 경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변화를 선택한 이유를 짐작하게 만든다. 자신의 운명, 혹은 올바른 길이라는 이유가 전부였던 과거 영웅들과는 다른 방식이다.
1960년대에 발간된 ‘닥터 스트레인지’의 원작은 동양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마법 세계를 그렸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는 배우 캐스팅 과정에서부터 인종 차별 논란을 겪었다. 원작에서 동양인 노인이었던 에이션트 원 역할을 백인 여성 틸다 스윈튼이 맡은 것이다. 실제 영화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인물들은 모두 백인이고, 흑인과 동양인은 하나씩 부족한 주변 인물로 그려졌다. 백인 에이션트 원이 정신과 마법의 세계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을 관객들이 이질적으로 느낄 가능성도 있다.
스트레인지 역할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연기했던 ‘셜록’이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한 ‘아이언맨’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스트레인지만의 고민과 정체성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에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셜록) 외에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매즈 미켈슨(더 헌트),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치웨텔 에지오포(노예 12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틸다 스윈튼(마이클 클레이튼) 등 충분히 인정받은 배우들이 펼치는 강렬한 연기도 볼거리다. 12세 관람가. 26일 개봉.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