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정진용 기자]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들었지만 차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연일 대서특필되는 ‘최순실 게이트’에 국민은 충격을 받다 못해 망연자실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합니다.
드디어 새누리당마저 26일 오후 최순실(개명 최서원·60)씨에 대한 특별검사 도입을 결정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어떻게 대응할지 온 나라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시작은 지난 24일 JTBC의 보도입니다. 해당 매체는 최씨의 사무실 컴퓨터에 저장된 200여 개의 파일을 분석한 결과 “최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등 44개의 파일을 사전에 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뿐 아니라 극비리에 진행되는 해외 순방에 맞춰 옷을 고르고, 대통령 보고자료까지 검토하는 등 국정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국가 기밀도 예외가 아닙니다. 최씨는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인 지난 2012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을 독대하기 전 국가 안보 기밀이 포함된 사전 시나리오를 받아보기도 했죠.
또 지난 25일 한겨레가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을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최씨 사무실 책상 위에는 항상 30cm 정도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가 놓였다고 합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최씨가 모임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이 자료를 던져주고 읽어보게 하고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며 “최씨 말을 듣고 우리가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올리면 그게 나중에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그대로 청와대 문건이 돼 거꾸로 우리에게 전달됐다”고 말했습니다.
급기야 청와대 행정관이 민간인에 불과한 최씨에게 음료수를 정리하고 핸드폰을 닦아 건네는 등 공손한 태도도 영상을 통해 공개됐죠.
박 대통령은 결국 쏟아지는 ‘팩트 폭력’(사실을 의미하는 영단어 ‘Fact’와 폭력의 합성어로,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을 제시하면 오히려 받아들이는 쪽이 폭력처럼 느낀다는 신조어)에 백기를 들었습니다.
지난달만 하더라도 ‘비선 실세’ 의혹에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이라고 규정한 그였죠.
박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 때 연설과 홍보 분야에서 최씨에게 조언을 구했다”며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한 일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게 되어 송구스럽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약 90초간 준비한 원고만 읽고 퇴장하는 모습이 ‘사전 녹화’ 뒤 방영된 사실이 알려지자 박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질문 없는 사과 회견은 처음 봅니다. 그것도 녹화된 사과 회견은 첨단적”이라며 “수십 개 의혹 중 하나만 딱 집어서 해명, 그것도 모자란 해명을 하는 건 참 창조적”이라고 꼬집었죠.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하야’ ‘탄핵’이 1,2 순위를 다투는 풍경도 연출됐습니다.
새누리당은 그야말로 ‘집단 멘붕’(멘탈 붕괴를 줄인 말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상황을 뜻하는 신조어) 상태입니다.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 등을 받아봤다는 논란에 이정현 당 대표는 “나도 연설문 준비할 때 친구에게 물어본다”고 말했다 같은 당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현재 비박계 의원들은 사실상 이 대표에게 사퇴를 촉구하고 있으며 박 대통령에게도 자진 탈당을 요구하는 상황이죠.
검찰에 대한 못 미더운 시선을 의식한 듯 새누리당은 결국 특검 도입을 결정했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이릅니다. 측근 중 한 명을 내세워 ‘꼬리자르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전국 대학가에선 ‘비선 실세’ 의혹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26일 박 대통령의 모교 서강대에서는 후배들이 ‘선배님, 서강의 표어를 더 이상 더럽히지 마십시오!’라는 시국선언문을 통해 “박 대통령은 더는 책임을 회피하며 국민적 불신을 자초할 것이 아니라 직접 국민 앞에 사과하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죠.
국민은 박 대통령에 진정성 있는 사과와 그에 대한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남은 임기 동안 박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를 극복하고 국정 동력을 잃지 않을 수 있을지는 온전히 박 대통령 자신의 결정에 달려있습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경질하고, 도피 중인 최씨를 설득해 입국하도록 하는 방법도 그중 하나겠죠.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전례 없는 ‘국정 농단’ 사태, 그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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