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여기 한 소녀가 있다. 열두 살밖에 안 된 소녀는 다섯 살 난 동생이 죽은 이후 틈만 나면 자살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소녀가 줄만 보면 목을 매달려고 하자, 의사들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줄넘기조차 금지하게 된다.
또 한 소녀가 있다. 성공한 사업가인 아버지, 변호사인 오빠와 정치학 박사인 언니,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전업주부 엄마. 남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가정에 전도유망한 그 소녀는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살가죽조차 역겨워하며 음식을 거부한다.
또 어떤 노인도 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이 노인은 자신이 점점 미쳐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종국에는 자기 주변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고 싶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에는 얼핏 보면 우리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기이하고 충격적인 사연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 스토리와 함께 심리 분석이 등장한다. 영국의 임상 심리학자이자 아동 심리학자인 저자가 임상 심리학자 실습생 시절에 겪은 경험담을 바탕으로 구성했다.
“요즘에는 재미 삼아 정신병원으로 구경을 가는 사람은 더 이상 없지만 우리는 마음껏 소리 지르고 ‘정신 차리라’고 막말을 할 수 있는 매정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서건, 타인의 몰락을 보고 싶어 하는 끝없는 욕망을 통해서건 여전히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관음적 즐거움을 누린다. 게다가 그러한 몰락이 ‘모든 걸 가진’ 자들에게 일어나면 우리는 더없이 즐거워한다.” (p.434)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의 원제는 ‘해골 찬장(the skeleton cupboard)’이다. 집안의 치부 혹은 비밀을 뜻하는 은어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이 책은 정상적인 가족 신화에 물음표를 던진다. 우리가 말하는 정상성, 이를테면 인자한 아버지와 너그러운 어머니, 품성 고운 자식으로 이루어진 ‘정상 가정’이라는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누가 봐도 콩가루 집안인 집뿐 아니라 누구나 선망하는 화목한 가정도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성원 간의 연민과 원망, 트라우마와 콤플렉스가 뒤섞여있다. 저자는 그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모든 가정, 모든 사람에게는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타냐 바이런 지음 / 황금진 옮김 / 동양북스 / 1만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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