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정진용 기자] 중소기업청(중기청)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와 재판이 진행중인 기업에 대해 같은 사안으로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중기청은 공정위 고발이 의무고발요청제도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지만, 경직된 운영으로 애꿎은 중소기업에 피해만 입혔다는 지적이다.
중기청은 지난 19일 오전 보도자료를 내고 “전날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불공정 하도급 거래행위로 중소기업에 피해를 준 CJ대한통운(주)과 (주)에코로바를 공정위에 고발 요청했다”며 “에코로바는 등산화 제조를 위탁하며 다수의 하도급법 위반행위를 함에 따라 공정위로부터 재발금지명령 및 과징금5400만원을 부과받았다”고 발표했다.
의무고발요청제도(의무고발)는 기업의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해 지난 2014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중기청장 등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소관 법률 위반사항 등에 대해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는 의무적으로 1~2일 이내에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문제는 에코로바가 지난해부터 같은 사안으로 공정위를 상대로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며 이미 1심에서 승소했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4월 에코로바가 수급 사업자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음에도 발주를 임의로 취소하거나 대금을 뒤늦게 지급했다고 보고 공정거래법 제13조와 8조에 의거,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다. 이에 에코로바는 지난해 9월 공정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1심에서 승소한데 이어 중기청이 보도자료를 배포한 바로 다음 날인 20일 2심에서도 서울고등법원은 다시 공정위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납부명령 중 과징금납부명령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공정위의 과징금납부명령은 과징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하도급 대금의 산정에 있어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판결했다.
에코로바 측은 중기청이 20일 고등법원 판결이 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의무고발을 진행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에코로바 관계자는 “과징금을 취소하라는 재판 결과가 나오기 하루 전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보도자료가 나가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브랜드 이미지 훼손은 물론이고 협력업체와의 관계 악화 등 피해가 막심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에코로바 측은 의무고발 절차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에코로바 관계자는 “의무고발 전에 해당 업체의 변론을 듣는 과정도, 사전 통보도 없어 다음날 기사를 보고 고발된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기청에 이의를 제기했더니 잘못을 시인하고 국정감사 때문에 바빴다는 핑계를 댔다”면서 “‘보여주기’식으로 의무고발을 발표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중기청 측은 “재판 결과와 의무고발은 별개의 건”이라는 입장이다. 중기청 관계자는 “소송 결과를 일일이 다 지켜보고 일정을 진행하지는 않는다”며 “대법원까지 가는 경우도 왕왕 있는데다 의무고발요청도 시한이 정해져 있다. 일정이 공교롭게 겹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고발요청 전 심의 과정에 대해서도 “해당 업체 책임자 및 담당자를 출석시켜 회의를 진행하지는 않는다. CJ대한통운도 에코로바와 마찬가지로 기존에 제출했던 해명자료를 통해 판단했다”며 “심의회의 전 이미 수차례 에코로바 측에 추가로 설명할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법원 판결에 대해선 “에코로바가 완전히 승소한 것이 아니다”면서 “부당행위는 인정됐고, 과징금 산정에서만 오류가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중기청의 의무고발이 국정감사에서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지적이 나온 뒤 등 떠밀려 급하게 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조배숙 의원이 중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제도가 도입된 지난 2014년부터 고발 요청 대상 197건 중 9건(4.5%)만이 검찰에 고발됐다.
국감에서 조 의원은 “중소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공정위에서 넘어온 사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 검찰에 적극적으로 고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기청은 이에 “향후 불공정거래 행위나 지위를 남용하는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발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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