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한때 국가대표로 선발돼 금메달까지 넘보던 유도선수 고두영(도경수)은 시합 중 부상으로 시신경 손상을 입는다. 두영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고, 유일한 혈육은 사기죄로 교도소 수감 중인 고두식(조정석)뿐이다. 두식은 자신의 동생이 부상당했다는 것을 신문 기사로 접하고 가석방을 신청한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두식을 대면한 두영의 반응은 차갑다. 그도 그럴 것이 두영이 어릴 적 집을 나가 연락 한 번 되지 않고,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은 두식이다. 두식은 두영이 밥을 굶든 말든 제 먹을 것만 챙기고,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을 둘러보며 담보 대출금이 얼마나 나올까만 골똘히 생각한다. 한때 국가대표였을 만큼 체력이 엄청났던 두영이 영양실조로 쓰러져도 병원비 수납할 의리조차 없는 형. 자신의 병간호를 조건으로 가석방된 형이 불쌍하기는커녕 제발 사라줘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동생. 형제의 동거는 삐걱거리기만 한다.
영화 ‘형’(감독 권수경)이 가진 내러티브는 단순하고 구시대적이다. 사이가 좋지 않은 형제가 다시 우애를 극복하고, 이를 신파로 마무리하는 식이다. 두영의 시신경 손상은 단순히 두식과의 나쁜 사이를 강조하는 장치로 쓰인다. “장애는 극복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라는 극 중 대사는 두영이 장애를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축소하기 위함이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일어난 또 다른 우환은 뻔하고 진부하다. 몇 십 년간 만들어진 연말 가족 영화의 답습판이다. 이는 연출 혹은 시나리오, 어느 한 쪽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저 모두가 안이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영화를 살리는 것은 배우들의 맛깔스러운 연기다. ‘건축학개론’을 거쳐 ‘특종’, 드라마 ‘질투의 화신’까지 관객의 기대치를 한껏 높여놓은 조정석은 이번에도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가 연기하는 장면 곳곳마다 기발함이 튀어나오고, 웃음이 터진다. 대사의 반 이상이 욕이지만 불편하기는커녕 정답다. “나는 카드가 없는 사람이에요. 카드 있었으면 좋겠다, X나”같은 대사들은 대번에 극과 현실을 연결시키며 조정석 표 친근함을 뽑아낸다.
도경수의 활약도 대단하다. 모든 것이 안이한 영화 속에서 도경수는 묵직함으로 극을 끌어간다. 조정석의 연기가 자극적인 양념이라면 도경수는 쌀로 갓 지은 밥처럼 충실하고도 달짝지근한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를 보기 전, 주연이 엑소 디오라 망설인다면 연기력에 대한 기우는 없애도 무방하다.
모든 것이 불안한 지금의 시기에,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되새길 수 있는 영화다. 오는 24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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