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 민심]은 시장, 지하철역, 광장, 길거리 등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찾아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묻는 코너입니다. 가감 없이 솔직한 시민들의 발언, 함께 보시죠.
[쿠키뉴스=민수미, 정진용 기자] “금메달 보여줘도 되나요”
‘비선실세’ 최순실(개명 최서원·60)씨의 국정 농단만큼이나 국민의 공분을 산 사건이 있습니다. 최씨의 딸 정유라(20)씨의 입학 특혜 의혹입니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지난 18일 교육부는 감사 결과 정씨의 특혜 의혹이 사실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당시 입학처장 등 입학전형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특혜를 준 교수들을 업무방해죄로 고발하기로 했죠.
정씨의 체육특기자 전형 면접 당일, 입학처장은 심사관들에게 “수험생 중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를 뽑아라”고 강조했습니다. 정씨도 소지품 반입이 금지됐음에도 금메달을 들고 들어가 테이블 위에 올려놨죠. 또 그는 지난 2015년 입학 이래 8개 과목의 수업에 단 한 차례도 출석하지 않았고 ‘망할 XX’ ‘비추함(추천하지 않는다는 뜻)’ 같은 비속어가 난무하는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정씨는 고등학교 3학년 재학 당시 실제로 등교한 날이 17일에 불과했으나 수행평가에서 만점을 받고 교과우수상까지 받았죠.
정씨의 ‘학사 농단’에 가장 허탈한 사람은 아마 대학만을 바라보며 열심히 공부해왔던 학생들과 이들을 묵묵히 응원해온 학부모였을 겁니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지난 18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과 중구 명동을 돌며 정씨의 부당한 특혜에 대한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봤습니다.
길에서 마주친 학생들의 대다수는 ‘억울하고 화가 났다’고 토로했습니다.
바로 전날 수능을 치렀다는 숭의여고 나소희(19·여)양은 “일반 학생들은 좋은 대학교 가려고 열심히 공부하는데 부모 잘 만났다는 이유를 특혜를 받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친구들끼리도 정씨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는데 다들 수험생인 만큼 ‘짜증 난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취업준비생 김하람(27)씨는 “우리 사회가 노력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는 걸 증명한 사건”라며 “전 국민을 실의에 빠지게 했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해도 안 되겠구나’라는 자포자기 심정을 느꼈다는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친구와 함께 명동을 찾은 이화여고 노모(19·여)양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공부해왔는데 (정씨의 이대 입학은) 열심히 해도 안 된다는 걸 보여줬다”라며 “‘어차피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세상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하지’란 생각이 들었다. 될 사람은 되고 안 될 사람은 안 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습니다. 학생들은 “세월호 사건 때부터 무너져 온 국가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덧붙였습니다.
‘부모님이 최씨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의견도 있었는데요, 이화여고 장모(19·여)양은 “‘노력할 필요 없다’는 최씨의 교육관은 잘못됐다”며 “엄마로부터 옳지 않은 걸 옳다고 배운 정씨는 가해자면서 동시에 피해자”라는 ‘어른스러운’ 대답을 내놨습니다.
부모세대는 어떨까요.
노량진에서 만난 이영순(70·여)씨는 “‘우리나라는 권력이나 돈이 없으면 애들 학교 보내기도 힘든 것 같다“고 털어놨습니다.
아이들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우려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명동에서 만난 이모(63·여)씨는 “특히 수능을 치룬 아이들이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정씨는 고등학교도 며칠 밖에 안 나갔다고 하던데 어떻게 상장도 받고 대학도 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에 거주하다 잠시 귀국했다는 박루시아씨는 “돈이 있다고 아무 노력도 없이 다 갖는 건 말이 안 된다”라며 “아이들이 위화감을 느끼고 ‘쟤(정씨)는 부모 덕분에 잘 살고 우리는 부모 때문에 못 사나’라는 생각을 할까 봐 슬프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최씨 모녀를 그냥 내버려 둬선 안 된다”며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걸 보여줘야 젊은 사람들이 그나마 위안을 얻지 않겠나”라고 강조했습니다.
정씨가 자신의 SNS에 남긴 ‘돈도 실력이야. 네 부모 원망해’라는 글에 대해선 “못 해주는 부모 입장으로선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면서도 “내가 봤을 땐 무조건 해달라는 거 다 해주다 보니 애를 망친 것 같다. 자식을 그렇게 키우는 돈 많은 부모들이 한국에 많은 것 같다”는 뼈있는 말을 남겼죠.
이처럼 정씨 단 한 사람을 위한 부적절한 특혜는 온 사회를 ‘순실증’이라는 집단적 자조와 우울증에 걸리게 해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21일 정씨를 소환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과연 정씨는 국민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을 만한 응당한 처벌을 받게 될까요. 어린 학생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