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미씽: 사라진 여자’의 지선은 아이를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기 위해 밤낮 없이 일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를 잃은 워킹맘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100분 내내 달리고, 절규하고, 증오하고, 절망하는 지선 역을 맡은 엄지원은 좀처럼 관객이 스크린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최근 서울 팔판동에서 만난 엄지원은 “일하는 여자로서 지선에게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고 시나리오를 선택한 계기를 밝혔다. 결혼한 지는 2년. 아직 아이는 없지만 일하는 시간이 많은 여배우인 엄지원은 지선에 관해 “겁이 덜 나는 캐릭터였다”라고 말했다. 스스로도 그렇지만 주변 친구들이 일하면서 아기를 보모에게 맡기는 이야기를 들어왔던 엄지원은 ‘미씽: 사라진 여자’가 꼭 자신의 주변 이야기 같았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제 옆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일 같아서 섬뜩했어요. 말 그대로 한국의 육아 환경이나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녹여낸 한국형 스릴러 아닌가요. 할리우드에서는 못 찍죠. (웃음)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어요. 여성 투 톱에다가 완성도까지 높은 시나리오가 저에게 온 건 처음이었고, 꼭 잘 해서 좋은 결과를 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모든 배우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여배우들에게 좋은 시나리오는 반가운 일이다. “항상 여배우들은 좋은 작품에서도 사이드 캐릭터로 나오거나, 소모되는 경우가 많아요. 원 톱이다 싶으면 호러 장르거나. 그래서 저는 대부분의 시나리오에서 연약한 캐릭터를 받아도,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작업을 항상 해 왔죠. 그렇지만 ‘미씽’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영화여서 정말 기뻤어요.” 문제는 투자였다. ‘미씽’의 시나리오가 좋다는 소문은 영화계에 짜하게 돌았지만 투자는 쉽게 성사되지 않았고, 고전을 겪었다. “이야기가 이렇게나 좋은데도 단순히 여배우들만 나오기 때문에 투자가 어렵다니 너무 슬펐어요. 반면 ‘내가 열심히 해야지’, ‘정말 한 번 잘 만들어 볼 거야.’ 이런 마음도 들었죠.”
그렇다고 작업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선의 '비호감'적인 부분들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선은 육아를 위해 일을 하다 본의 아니게 육아를 망쳐버린 캐릭터로 나온다. 이 과정에서 느린 경찰 조사를 참지 못하거나, 스스로 조사에 나섰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저는 지선이 저나 혹은 친구 같아서 너무나 공감됐지만 남성 스태프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작품을 찍으면서도 끊임없이 그들을 설득해야 했죠. 스태프조차 공감하지 못한다면 관객을 설득하는데도 실패하기 마련이니까요. ‘미씽’은 모성을 계기로 여자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지만, 남성들은 모성으로 시작해 모성으로 마무리하는 이야기를 원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풀고 싶었어요. 사회가 여성에게 암암리에 가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런 것을 ‘위대한 모성’으로 가릴 수는 없잖아요.”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비혼 문제를 건드린 데 이어 이제는 워킹맘이다. 엄지원은 “제가 여성 운동가도 아니고, 페미니스트라고 감히 말할 수도 없지만 여성 운동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느꼈다”며 “나도 어느 순간 촬영 중에 그 시선들을 피부로 느끼며 절로 싸우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관객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물을 연기하다 보면 다양한 문제들을 만나요. 그런 문제들을 환기시키는 것은 배우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영향력이라고 생각하죠. 예민한 문제들을 제가 연기함으로써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영광이에요. 그래서 그런 역할이 오면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지고 공감을 살 수 있게 많이 준비하는 편이죠.”
‘미씽’에 관해 엄지원은 단 한 가지만 바란다. “정말 솔직히, 많이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떤 것이든 이슈가 되고 사람들 사이의 화제가 되려면 숫자가 받쳐줘야 하잖아요. 끝나고 나면 깊은 여운도 남고 생각할 거리들도 많은 영화예요. 티켓 금액이 아깝지 않을 만큼 재미있는 영화니 관객 여러분들이 많이 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미씽: 사라진 여자’는 오는 30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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