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정진용 기자] 청와대에 잠적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박 대통령은 29일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는데요, 혹시라도 직접 ‘하야’를 언급하지 않을까 관심이 쏠렸습니다.
백만 명이 훌쩍 넘는 촛불집회가 열릴 때마다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했던 청와대의 말은 그야말로 말뿐이었던 걸까요. 3차 대국민담화 역시 앞서 있었던 두 차례의 담화문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박 대통령은 “저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면서도 “단 한 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한술 더 떠 국회에 공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직 임기 단축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면서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죠.
시민단체와 야당은 일제히 대통령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웠습니다.
“100번이라도 사과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박 대통령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대통령은 이미 ‘피의자’ 신분 입니다. 박 대통령의 범죄 행각은 수많은 언론 보도와 검찰 수사를 통해 만천하에 공개됐지만, 자신만 애써 부인하고 있죠. 또 기자들의 질문에 도망치듯 황급히 퇴장하는 모습도 공분을 샀습니다.
국민의당 노회찬 의원은 자신의 SNS에 “박근혜 3차담화의 5대술책”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1.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2. 스스로 책임지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3. 국회에 공을 넘겨 4. 새누리당 탄핵대오를 교란하고 5. 개헌으로 야권 분열시키려는 술책”이 그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많은 분들의 예상대로 국회에 공을 넘기고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극심한 정쟁이 일어나도록 ‘이간계’를 쓰는군요. 과거 통했던 정치 공작, 이젠 안 통합니다”라고 일침을 날렸습니다.
촛불집회를 주최해 온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대국민담화 발표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국민이 고사한 권력자의 퇴진 선언이나 하야 발표를 기대했지만 자신의 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파렴치한 담화에 불과했다”고 목소리 높였습니다.
자신이 결정해야 할 사안을 남에게 떠넘기는 박 대통령의 모습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는 지난 8일에도 야당과 미리 일정도 조율하지 않고 국회를 찾아 “여야합의로 총리를 추천해달라”고 말해 논란이 됐습니다. 끝까지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시간을 끌다 보면 국민이 먼저 지치지 않을까’라는 속셈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민의 분노는 쉬이 사그라들지 않을 듯 합니다. 벌써 촛불집회는 한 주도 거르지 않고 한 달이 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26일 집회에는 쏟아지는 눈에도 불구하고 주최 측 추산 190만명의 국민이 광화문 광장에 모였습니다.
또 잇따른 촛불집회 폄하 발언은 촛불을 횃불로 키우는 ‘땔감’이 되어주고 있죠.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 김종태 의원의 “촛불집회는 종북 세력의 조직적 선동” 발언이 대표적입니다.
이번 대국민 담화는 ‘국정농단’ 시국을 잠재우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네티즌들은 벌써 3차 대국민담화를 ‘촛불집회 초대장’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국민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지도자는 없다’는 간단한 명제를 박 대통령이 깨닫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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