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판도라' 박정우 감독 “정치인들, 국민 목숨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아”

[쿠키인터뷰] '판도라' 박정우 감독 “정치인들, 국민 목숨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아”

기사승인 2016-12-06 10:51:21

[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영화 ‘판도라’(감독 박정우)는 올해 관객이 온전히 몰입하기 가장 힘든 영화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에 닥친 엄청난 재앙을 국민들에게 감추려는 정부와 미흡한 시스템, 전시행정을 위해 매몰된 안전과 아무것도 모른 채 재난에 휩쓸리는 대중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과 너무나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영화에 공감하게 되지만, 영화를 보는 도중 문득문득 우리를 가로막는 현실이 영화와 지나치게 같다는 것은 암담함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최근 서울 팔판로에서 만난 박정우 감독은 “이런 모양새로 개봉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판도라’는 뜻밖의 지진으로 원전이 폭발하게 되고, 이후 한국이 당하는 재앙과 정치적 상황 등을 그렸다. ‘판도라’의 제작이 시작된 것은 4년 전인 2012년이다. 지진, 재난 대비 시스템의 부재, 정치인의 무능, 혼란이 만들어내는 집단 아노미, 사태를 생생하게 보도하는 JTBC 로고 등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모습들이 지금의 시국과 맞닿아 있지만 일부러 노린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박정우 감독은 “자료 조사를 할 때만 해도 우리 나라는 지진과 전혀 상관없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라며 소재를 선택한 배경에 관해 설명했다. 

“쓰나미부터 화재까지 원전 사고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지진을 선택했고, 그 후에 일어날 각종 가능성들을 타진해서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다양한 요소들이 지금의 한국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건 놀랍기는 하지만 달갑지는 않아요. 영화 홍보에 도움이 되던 논란이 되던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재난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죠. 제 시나리오에 썼던 모든 일들은 제 입장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으니 우리는 그러지 말자’고 쓴 것인데, 그게 맞아떨어지는 건 스스로는 무서워요.”

그야말로 현실이 영화를 이길까 봐 몇몇 소름끼치도록 비슷한 장면은 빼기도 했다는 것이 박 감독의 설명이다. 주로 대통령을 위시한 정치인들의 장면이다. “애초에 원전 사고에 관한 이야기인데 정권 비판에 시선이 모인다는 것도 감독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는 않은 일입니다. 우리 영화는 2년 전에 만들었어도 시국과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일 수 있었고, 2년 후에 나왔어도 시국과 맞닿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하필 가장 뜨겁게 정치 문제가 논의되는 시기에 영화가 개봉하네요.” ‘판도라’의 첫 홍보지침 중에는 ‘원전’이라는 단어도 쓰지 말고 그저 인재(人災)라고만 하자는 논의가 오갔다는 것이 박 감독의 이야기다. 그만큼 민감한 이야기였는데, 막상 개봉을 앞둔 지금은 오히려 시국 이야기부터 다양하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다.


민감한 소재니만큼 영화 제작 단계부터 외압이 있다는 이야기도 꾸준히 들려왔다. 배우 정진영은 앞서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제작 단계에서 다양한 외압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박 감독은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단호히 밝혔다. 외압 논란이 불거지면 영화의 홍보가 자칫해 동정표에 몰릴까봐서다. 콘텐츠는 콘텐츠 자체의 퀄리티로 승부하는 것이며 환경 때문에 부수적인 흥행을 동원하게 되는 것은 박정우 감독이 바라는 바는 아니다.

다만 영화로서 말하고 싶은 바는 있다. “제가 이 나라에 살면서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거예요. 국민들을 단순히 세금을 내는 개체라고 생각하고 숫자로 카운트하죠. 국가적 재난이 있을 때마다 그들의 생명 경시가 드러나요. 국민들의 목숨이 소중하지 않다는 것이 잘 보이기 때문에 그런 제 시선에서 시나리오를 썼어요. 그런데 제가 본 세상이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이럭저럭 비슷했기 때문에 영화가 현실과 겹쳐 보이는 것 같아요.”

“사실 ‘판도라’는 전형적인 재난 영화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요. 왜냐하면 더 많은 사람이 봐 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죠. 관객들이 제가 제기하는 원전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하고, 기억하게 된다면 저는 창작인으로서 꽤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판도라’는 다음달 7일 개봉한다. 

onbge@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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