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파리 테러가 일어난 지 사흘 뒤인 11월 16일.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이자 파리 테러로 아내를 잃은 앙투안 레이리스(Antoine Leiris)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IS에 보내는 공개서한을 올렸다. 글은 이렇게 시작됐다. “금요일 저녁 당신들은 예외적인 한 사람, 내 필생의 사랑이자 내 아들의 어머니인 한 여인의 생명을 도둑질했다. 그렇지만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
글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는 IS에게 보내는 이 공개서한에서 태어난 지 17개월 된 아들 멜빌과 함께 남겨진 삶을 더 단단하게 지켜낼 것임을 선언했다.
“죄를 지은 자, 자신의 분노를 퍼부을 대상을 눈앞에 빤히 두고 있다는 건 말하자면 반쯤 열린 출구, 자신의 고통을 용케 피해나갈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범행이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범인의 존재는 이상적인 분노 배출구가 되어줄 것이고, 증오 또한 정당화될 것이다.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자들에 대해 생각하면 되고, 자신의 삶을 증오하지 않기 위해서 그자들을 증오하면 되며, 살아남은 자들에게 미소 짓지 않기 위해서 그자들의 죽음에 기뻐하면 될 것이다. (…) 경기관총의 일제 사격으로 그들은 우리의 퍼즐을 엉망으로 흩어놓았다. 우리가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맞추게 될 때, 완성된 퍼즐은 예전과 똑같을 수 없을 것이다. 퍼즐 속 그림엔 분명 빠진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우리 둘만 남아 있을 테지만, 우리는 빠진 사람의 빈자리마저 모두 채울 것이다. 엘렌은 그곳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의 눈 속에서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게 될 것이며, 우리 두 사람의 기쁨 속에서 그녀의 불꽃이 타오를 것이고, 우리 두 사람의 혈관을 타고 그녀의 눈물이 흐를 것이다. 우리는 절대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자들에 대한 반감 위에 우리의 새로운 삶을 쌓아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삶 속에서 나아갈 것이다.” (‘2015년 11월 16일의 기록’ 중에서)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는 2015년 11월 13일 파리 테러가 일어난 날 밤부터 2015년 11월 25일 앙투안 레이리스가 아내 엘렌 뮈얄 레이리스(Helene Muyal-Leiris)의 장례식을 치른 다음 날 아들 멜빌과 함께 다시 묘지를 방문하는 아침까지 단 13일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2주가 채 안 되지만 저자가 보낸 13일은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날들이었다.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에 담긴 용기와 희망, 자유와 행복의 메시지는 흉포와 야만, 무지와 분노가 판치는 세상에 대항하고자 하는 한 인간의 성숙하고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주요 언론의 극찬과 함께 20만 부 이상 판매됐다. 이번 한국어판은 파리 테러 1주기(2016년 11월 13일)를 앞두고 미국, 영국 등과 함께 동시 출간됐다.
앙투안 레이리스 지음 / 양영란 옮김 / 쌤앤파커스 /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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