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너의 이름은.’ 화해하지 못하는 현실과 판타지의 아름다운 밀고 당기기

[쿡리뷰] ‘너의 이름은.’ 화해하지 못하는 현실과 판타지의 아름다운 밀고 당기기

기사승인 2016-12-21 17:19:16


[쿠키뉴스=이준범 기자] 두 마리의 토끼를 좇는 꿈을 꾼 듯하다. 어느 토끼도 잡지 못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꿈이었다.

어느 산골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 미츠하(성우·카미시라이시 모네)는 집안 대대로 지켜오는 신사 풍습이나 아버지의 선거활동에 염증을 느끼고 도쿄에서의 화려한 삶을 동경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도쿄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생활하며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년 타키(성우·카미키 류노스케)의 몸으로 깨어나 하루를 보낸다. 다음날이면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오지만, 친구들과 가족들은 어제 이상했던 나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는다.

꿈인 줄 알았던 뒤바뀐 하루는 그 이후에도 계속된다. 알고 보니 타키도 미츠하의 몸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규칙을 정하고 각자의 일상생활을 기록하며 바뀐 삶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두 가지 삶을 오가는 데 익숙해지던 타키는 어느 날 갑자기 미츠하의 몸으로 깨어나지 않게 된다. 산골 마을을 그리워하던 타키는 어느 날 미츠하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감독 신카이 마코토)에는 SF와 청춘 로맨스가 혼재돼 있다. 기존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추구하던 정밀하고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엇갈리는 남녀의 섬세한 이야기에 할리우드에서 볼 법한 SF적인 요소가 더해졌다. 그 결과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영화가 탄생했다. ‘너의 이름은.’이 지난 8월 일본에서 개봉한 이후 누적 관객수 1500만명, 흥행 수익 200억원을 돌파하며 엄청난 흥행에 성공한 이유 역시 장르 결합이 만들어낸 신선한 재미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반부까지 끌고 가는 이야기의 힘이 대단하다. 남성과 여성의 몸이 뒤바뀌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린 영화나 드라마는 많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은 에피소드에 따뜻한 시선과 유머, 섬세한 감성을 담아내며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어질러진 집안을 청소하듯 문제점을 하나씩 해결해가며 성장하는 재미는 물론, 시간과 시간,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 모두 이어져있다는 ‘무스비’ 같은 철학적인 개념을 제시하며 끊임없이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꿈같았던 이야기는 순식간에 무력한 현실적인 이야기로 돌변한다. 운명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래도 믿고 싶었던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거꾸로 현실의 욕망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현실과 판타지는 화해하지 못하고 자꾸만 부딪힌다. 미츠하와 만나려고 하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공간을 오가는 판타지에 기대야 한다. 그렇다고 평범한 고등학생이 시공간을 뛰어넘자니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SF와 로맨스가 하나의 결론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길을 열어주는 건 또다시 운명이다. 자꾸만 잃어가는 기억 속에서 서로 ‘너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되뇌는 주인공들은 운명 앞에 무력하다. 영화 속 세계에서 만들어낸 동력 대신 외부의 신적인 존재가 이야기를 좌우하는 모습을 관객들은 넋을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 순간의 영상미는 유독 화려하고 압도적이어서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너의 이름은.’의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가능성이 높다. 일본 관객들은 결말을 납득한 분위기다. 학창 시절 그 무엇보다 중요했던 첫 사랑에 대한 기억이 바쁜 현실을 살아가며 잊히는 이야기에 공감한 것이 흥행 성공의 원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무력하게 운명에 순응하는 것보다 현실 속에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 관객이 이 영화의 결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너의 이름은.’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건 따뜻하고 아름다운 감성 때문이다. 이야기가 어찌됐든 선량하고 정당하게 한 걸음씩 노력하는 주인공들을 보면, 잊고 있던 순수함이 떠오르는 동시에 치유되는 기분마저 든다.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작화 감독을 맡았던 안도 마사시가 만들어내는 영상미는 단연 백미다. 내년 1월 5일 개봉.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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