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국정농단 사건 이후로 국내 박스오피스 차트와 함께 떠도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뉴스가 저렇게 재미있는데 누가 영화를 봐요.” 논픽션은 픽션을 뛰어넘는다지만 너무한 현실 때문에 덩달아 박스오피스까지 말라죽고 있다는 소리다.
영화 ‘더 킹’(감독 한재림)은 최근 뉴스가 가장 재미있는 관객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할 만한 영화다. 전두환·노태우 시절 양아치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박태수(조인성)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던 아버지가 검사의 발 밑에서 손을 모아 비는 것을 보고 검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서울대 들어가 사법고시에 붙은 건 좋은데, 들어가 보니 검사도 딱히 대단한 권력자는 아니다. 샐러리맨이나 다름없는 생활 속에서, 박태수의 앞에 선배 검사 양동철(배성우)이 나타난다. 양동철은 박태수가 맡은 사건 중 하나를 계기 삼아 대한민국 최고의 검사 한강식(정우성)에게로 이끈다.
한강식은 “내가 역사야”라는 스스로의 말이 남부끄럽지 않을 만큼 엄청난 실력자다. 정치인들과의 사이에서 수많은 사건을 빌미로 쉴 새 없이 권력 줄타기를 한다. 대담하면서도 화려한 그의 언변과 실력에 박태수는 대번에 매료된다. 지긋지긋한 막내 검사 생활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잡고 싶었던 탓이다. 한강식이 권력을 잡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슈를 일으킨 다음 다른 이슈로 덮고, 어지간한 사건은 묵혀두었다가 누군가의 약점으로 둔갑시킨다. 대선 기간에 자신이 줄 선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다른 후보의 과거 사건을 터트리는 식이다.
그러나 한강식과 박태수의 서사를 영화가 비추는 방식은 무겁거나 진지하지 않다. 박태수의 내레이션을 통해 ‘더 킹’은 관객에게 박태수의 전기를 읽어주듯이 접근한다. 누가 당선될지를 알기 위해 무당에게 가서 점을 치고, 무당이 찍어준 故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는 미칠 듯이 환호하다가 다음 대선에서 실패했을 때는 “그 무당 구속시키라”고 화풀이하는 검사들의 모습은 헛웃음을 유발한다. 그야말로 블랙코미디다.
경쾌한 카메라 워크와 시대에 맞춘 BGM 또한 ‘더 킹’을 가볍게 볼 수 있게 만드는 요소다. 항상 진지할 것만 같은 검사들은 카메라 속에서 클론의 음악에 맞춰 화면을 질주하며 기쁨을 나타낸다. 수많은 소품들을 대비시킨 오프닝을 비롯해 영화 중간중간 스쳐지나가는 뉴스화면들은 관객에게 영화를 현실에 대입시켜 지극히 몰입시키거나, 혹은 영화에서 아예 관객을 분리해버린다. 그러나 어느 입장이 되더라도 ‘더 킹’이라는 블랙코미디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으며, 관객은 온전히 영화를 즐길 수 있다.
9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조인성과, 앞서 전작 ‘아수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끈 정우성의 조합은 말할 것도 없다. 134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내내 배성우와 류준열은 더없이 적확하게 쓰여 영화의 굽이굽이마다 감칠맛을 더한다. 오는 1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