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데뷔한지 23년이다. 한 가지 직업을 23년 동안 유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지만 배우 정우성은 꾸준함으로 한 자리를 지켰다. 관록과 여유가 쌓였지만 항상 처음 같은 그의 열렬함은 다른 후배들로 하여금 박수를 보내게 한다. 꾸준함에 대한 비결을 묻자 “임하는 자세에 대한 방식이 바뀌어서는 안된다”고 답하는 정우성을 영화 ‘더 킹’(감독 한재림)의 개봉일인 18일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같은 영화에 출연한 2년차 신인 류준열은 정우성에 대해 “현장에서 여유를 부리기는커녕 신인보다 더 열심히 하시니 신인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농 섞인 갈채를 보냈다. 이에 관해 정우성은 “분명히 신인 때보다는 여유가 있고, 덜 피로하지만 긴장감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 뿐”이라고 화답했다.
“제가 연차가 있다고 해서 관습적으로 돌변하는 순간, 저라는 사람은 나태해지고 모든 것이 당연해질 거예요. 당연함을 당연하게 대해서는 안 돼요. 연기를 하기 전에 스스로를 늘 신선한 상태로 깨워둬야 한다고 생각하죠. 하루 이틀 배우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쌓이는 연차 속에서 깨달은 사실이에요. 이전 영화를 못 하면 못 한대로, 잘 했으면 잘 한 대로 부담을 가지고 다음 캐릭터에 임하고, 이전의 캐릭터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을 다음 캐릭터로 받으려고 해서도 안 돼요.” 긴장감을 놓지 않기 위해 선택한 노력은 후배들에게 고스란히 열정으로 돌아가고, 좋은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더 킹’ 속 정우성이 연기한 검사 한강식은 욕망의 덩어리 같은 인물이다. 한강식은 영화 내내 다른 이들과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언제나 항상 혼자서 가장 좋은 식당에서 고급스러운 고기를 우아하게 썰어 먹는다. 정우성의 말을 빌자면, 한국 정서에서 식사는 나눔을 전제로 한 교류다. 한강식은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눌 의지가 없다는 것을 식사 장면으로 피력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비뚤어진 길만 나가는 한강식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동일시보다는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했다고 정우성은 말했다. 그래서 정우성이 한강식을 분석하기 위해 택한 방식은 ‘비아냥’이다.
“한강식을 놔두고 계속 스스로 비아냥댔어요. 한강식을 연기하기 위해서요. 한강식이 추악한 행동을 하고, 잘난 척 하고, 화려한 외피를 입는 모습을 보며 그것이 왜 비릿하고 음험한지를 고민했죠. 그리고 제가 한강식에게 느끼는 악한 모습을 그대로 연기했어요. 그렇게 차근차근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잘 구축하다가, 와르르 무너지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무너트려야 되는 캐릭터고, 그 재미로 연기하기도 했어요.”
시국이 하 수상한 만큼 정치권과 검찰의 유착 관계를 그린 ‘더 킹’에 대한 우려도 많다. 일견 정치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우성의 의견은 다르다. “당연한 것을 이야기하는 걸 정치적으로 보는 사람이야말로 정치적인 관점에 휩싸인 것이 아니냐”는 것.
“‘더 킹’은 정의를 이야기하는 영화예요. 상식선 안의 정당함을 요구하는 것은 정의이지 정치적인 것은 아닙니다. 표현을 자꾸 정치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자연스럽게 표현을 왜곡하고 위축시키게 됩니다. 물론 ‘더 킹’이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속 시원하다’라고 말하는 의견이 분명 있어요. 그렇지만 ‘더 킹’ 속 이야기가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가 비정상적으로 유지돼왔고, 사회적으로 시민들의 의지가 많이 꺾여있다는 방증이기도 해요. 축적된 부당함과 비논리적인 시스템을 견디던 사람들이 ‘바로잡자’고 외치는 것이 정치적인 걸까요? 저는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모두가 하고, 당연하게 정의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길 바라요.”
‘더 킹’은 18일 개봉한다.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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